[변명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숲의 시간

[변명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숲의 시간
  • 입력 : 2018. 10.09(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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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가로 알려진 스위스는 최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유학시절 지냈던 나라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동화 속 하이디가 뛰어다닐 것 같은 산악지역, 편리한 교통의 도시로 알려진 스위스는 유럽 한가운데 있는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며칠을 있게 되었던 스위스는 바다 가운데 있는 제주도와 전혀 다르지만 왠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모두가 친구가 될 수도, 모두가 적일 수 있는 나라와의 관계를 이들은 어찌 해쳐 나갔을까. 접경지역에 언어와 역사의 진화는 어떻게 만들어 왔을까. 접경지역 국가 언어를 그 지역의 공공어로 사용한다는 것은 놀라움이다. 언어를 다 내어 주지만 절대 내주지 않는 것, 무엇이 분명 있을 법 해 보였다.

오래 전 탐라는 해양도시, 온통 숲이었다. 배를 건조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목재가 풍성했던 산림을 갖고 있었음을 기록은 전한다. 과거를 외부의 수탈의 역사로 점철된 제주는 황망한 과거 상처뿐인 역사다. 유럽 한가운데 푸른 산과 호수가 넘치는 스위스와 우리의 제주가 중첩되면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내어주고 깊숙히 간직한 그것, 그것이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을 어찌 지켜가야 하는 것인가.

침탈의 역사가 지속되면서 제주는 500년 전의 번영을 뒤로하고 벌거숭이 산천이 되었다. 황망한 숲을 잃은 섬이 된다. 숲은 불질러져 초지가 되었고 그곳에 마소를 키웠다. 곶자왈 숲은 숯을 만드는 가난한 삶의 현장이었다. 일제 강점기는 울창한 서어나무를 베고 버섯을 키워 수탈한다. 근현대 전란기를 관통하면서 제주의 숲은 치유와 자정능력을 잃었다. 중산간 어느 마을에서 든 해안선을 볼 수 있는 민둥산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가난했고 숲이 될 시간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숲이 될 시간을 기다릴 경제력이 되었다. 안간힘을 다해 녹색의우리의 제주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자. 필자가 다녀온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 인근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연이어 있다. 그 중에는 개인이 기부한 공원이 많았다. 특히 플레이그라운드 버트란드 파크(playground Bertrand Park)는 넓은 공원이 주택가에 있는 드넓은 지역이다. 공원의 작은 오솔길은 도로로 연결되어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도심 안 아름다운 숲을 지나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 공원을 기부한 기부자는 땅을 기부하면서 조건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땅에 있는 나무는 베어내지 않는 조건이다. 디테일한 이런 조건으로 기부된 공원은 섬세한 시각으로 요구하고 바라보는 기부자의 시선이 늘 회자된다. 이름만을 남기는게 아니라 그의 철학을 남기는 장소로 말이다. 자연에 대한 배려가 이들이 갖고 있는 절대 내주지 않은 그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하였다. 기부자가 시당국에 디테일한 요구조건을 내걸어 기부하는 일도 멋진 일이다. 그 보다 더 필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증한 분의 뜻과 철학을 길이 전해주는 지속적으로 일하는 제네바시의 선진 행정이다. 우리는, 내 사랑하는 제주특별자치도는, 도민의 휴식공간인 공원조차 팔아먹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강진의 청자 가마터 어린시절 청자 조각을 갖고 놀던 아이가 있었다. 그 청자 가마터 주인집 아이는 커서 청자 무형문화재가 된다. 섬세한 감각을 살리는 좋은 공간은 사람의 미래를 바꿔 놓는다. 집과 가까운 곳, 숲 우거진 자연공원에서 날이 가는 줄 모르고 '숲의 시간'을 보낸던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땅을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까. 우리도 이제는 숲의 시간을 간직한 도시, 제주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 <변명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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