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엽의 한라시론] 태풍은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성주엽의 한라시론] 태풍은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 입력 : 2018. 10.04(목)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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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태풍 솔릭이 제주의 서부를 지나며 오른쪽 반원안에 든 생각하는 정원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강하고 느린 태풍 솔릭의 거센 비바람이 지나고 고요와 평화가 찾아들기 시작할 때 정원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나무들이 바람에 부러지지 않도록 여러 방향에서 묶고 당겨놓은 굵은 밧줄들을 먼저 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무이정표들을 다시 세우고 주변을 정리해놓고 본격적으로 낙엽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바람에 떨어진 어마어마한 양의 낙엽들을 치우며 쓸고 모으고 담고 트럭으로 실어 나릅니다.

청소하다 보니 크고 작은 나무들이 놓여져 있는 위치마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50년생 키 큰 와싱토니아 야자나무는 태풍에 부러졌고, 구석진 곳에 있던 엽란은 오랜만에 물을 만나 생기가 돕니다. 한편에 잡초무리가 보여 여럿이 함께 뽑으니 짧은 시간에 정리가 됩니다. 감귤정원의 푸릇한 하귤과 재래종 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바람에 떨어져 있습니다.

낙엽을 쓸고 담다 지쳐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며 마른 목을 축입니다. 물맛이 꿀보다 달음을 알게 됩니다. 몇 시간째 쓸고 담다보니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에 너나할 것 없이 돌바닥위에 눕습니다.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선선한 바람을 맞다보면 허리가 시원해지며 정신이 돌아옵니다.

한쪽에서는 온실로 대피한 분재들을 다시 야외로 내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쓰러진 대나무들을 차에 실어 나르고 나무를 묶던 로프를 차에 담아치웁니다. 태풍이 지난 다음날 오후 6시가 되니 어느 정도 정원청소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태풍은 약한 부분을 잘도 찾아 무너뜨리고야 맙니다. 뒤로 밀어 놓기도 했고 발견하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가차없이 쓰러뜨리고야 말았습니다. 태풍은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기다려주지도 않습니다.

9월 19일 학술원 원로들의 방문이 있어 함께 정원을 돌며 안내를 도와드리다가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놀란 나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센 바람의 위력에 놀란 나무들은 자신이 놓여 있는 위치마다 높이마다 느끼고 대응하고 있는 모습들이 달랐습니다. 좋은 장소에 있어 바람을 타지 않은 나무들과 바람이 너무 탈 것으로 걱정되어 온실로 옮겨 준 나무들은 좋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땅에 심어져 옮길 수 없는 정원수중 화려함을 뽐내며 붉은 축제를 연출하던 목백일홍들은 그 붉은 꽃들을 다 내어주었고, 황숙의 대과들을 자랑해야 할 모과나무들은 축제를 시작도 못하고 탯줄을 끊어내는 아픔을 겪으며 수개월 동안 키워온 그 큰 열매들을 무수히 떨어뜨렸습니다. 이제는 작디작은 모과들만 부여안고 모과나무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길고 긴 시간 모진 바람에 이파리를 많이 빼앗긴 모과나무는 생존까지 걱정해서인지 연두색 새순을 뽑아 가을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높은 위치에서 거센 바람을 마주하며 심하게 흔들렸던 등나무와 으름덩굴은 꽃들을 피웠습니다. 등나무와 으름덩굴은 4월에 꽃을 피우고 모두 진 상태인데 9월에 다시 핀 것입니다. 제주전역에서 때 아닌 벚꽃이 피었다, 목련이 피었다며 신기해 하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봄에 피는 꽃들이 가을에 피어난 것은 나무가 큰 죽음의 위기를 느끼기 때문에 종족번식을 위해 꽃을 피운 것입니다. 꽃을 피워야 씨앗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2018년 경제에 소리없는 태풍이 다가오는 게 느껴집니다.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아 다가오는 태풍을 단단히 준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주엽 생각하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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