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다랑쉬를 오르다

[송창우의 한라칼럼] 다랑쉬를 오르다
  • 입력 : 2018. 10.02(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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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쟁반 같이 둥근 보름달이 파랗게 내려앉았던 다음날, 고향이라고 찾아온 형제·가족들과 다랑쉬 오름을 찾았다. 겨울한파를 견디고 여름 찜통더위를 버틴 흔적이 역력한 능선엔 하얀 햇살이 가벼운 바람에 실려 쏟아진다. 초입 빽빽하게 자라난 삼나무 숲에도 흔들거리는 가지와 잎사귀 틈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스며든다.

20년 전엔 방목한 소와 목동이 오르내리며 붉은 송이가 듬성듬성 드러난 가파른 길을 올랐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기억이란 현재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지난 일이 현재 속에 살아 숨 쉬는 듯 하는 것은 그 때가 좋았기 때문일까. 방부목 계단을 지나자 완만한 경사진 길에는 야자매트가 깔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계속 다니니 땅은 파이고 비가 내리면 물길이 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게다. 오르는 길가에는 햇살을 받은 산마와 보라색의 무릇, 어린 시절 거꾸로 바지에 놓으면 사타구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크렁, 붉은 머리에 씨앗이 무거워 머리를 숙이고 바람을 기다리는 억새, 가막살나무도 한 여름 창창하던 푸름을 자랑하던 색 바랜 이파리와 붉은 열매를 달고 햇살이며 달빛과 별빛이며 우주를 품고 있다.

비와 바람에도 오름 자락을 조금씩 차지해 수 만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자기들의 살아왔던 방식대로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 서로 기대며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매일 밭에서 이러한 식물들과 씨름만 하고 평면적으로 살아왔던 농부도 가끔은 입체적으로 자연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웅장한 분화구가 내려다보이는 곳, 우리보다 앞서간 비구니 스님들과 에베레스트 산이라도 등정할 것처럼 멋진 등산복과 장비, 중형카메라로 무장한 등산객들이 긴 숨을 몰아쉬며 아래 펼쳐진 성산일출봉과 우도, 지미봉을 바라본다. 눈을 돌리면 한라산 아래 샘물이 바다방향이 아닌 한라산 방향으로 솟는다는 거슨새미오름과 백가지 약초가 자란다는 백약이 오름을 비롯한 많은 오름들이 선과 면으로 마주치며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 따라 물결처럼 일렁거린다.

자연이 빚어내는 풍광은 멀리서 바라보면 감탄이 나오지만 막상 저 아래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생각하면 긴 한탄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관광객들이 또한 도심생활에서 찌들어 좀 여유를 찾아보겠다며 사람들이 찾아들면서 아름답던 섬은 이제 바다에 가라앉을 지경이며 조간대까지 해안도로가 만들어 지고 크고 작은 건물과 쓰레기가 그림 속으로 밀려나오고 말았다. 중산간에는 하루 만에 땅을 팔아 40억 원 넘게 양도차익을 넘기고 떠난 땅 투기꾼들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천한 자본주의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투자유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주생명수를 간직하고 있는 곶자왈에 높다란 울타리를 만들어 리조트와 대형물놀이시설과 호텔을 지어 이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했다. 영어교육을 위한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대도 이들이 배출하는 쓰레기와 하수도 우리가 처리해야 한단다. 오름 아래는 수만 평씩 월동배추와 무를 심는 투기농사의 현장으로 변했다.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다. 우리의 존재이유인 땅과 사람마저 상품으로 변질된 건가. 함께 웃고 울며 더불어 삶을 살아왔던 역사적 존재로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사라지고 있다. 오름에서의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만이 아닐 거다. 이 땅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도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다.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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