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압록강·두만강을 가다] (2)다시 찾은 백두산

[백두산·압록강·두만강을 가다] (2)다시 찾은 백두산
겨레의 혼·젖줄·전인미답의 비경… 한발짝 디디면 북녘인걸
  • 입력 : 2018. 09.19(수) 01:00
  • 이윤형 선임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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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도문시 두만강공원에 조성된 두만강 관광부두. 북한과의 접경지역으로 강건너가 북녘땅이다.

2000년 8월 백두산 두만강 탐사
남북화해 국면 속 18년만 재가동

고구려 옛 도읍지, 두만강·압록강
'지척의 땅' 북녘 모습도 생생히
인구 급감 조선족사회 변화 절감


정확히 18년 전이다. 한라일보 한라산학술대탐사단이 백두산·두만강 탐사 장도에 오른 때가 2000년 8월 24일이다. 그로부터 18년이 훌쩍 지난 2018년 8월 24일 한라산·백두산 탐사단은 다시 백두산과 민족의 애환이 서린 역사의 현장, 압록강과 두만강을 찾아 나섰다. 동해로 이어지는 두만강 하류는 제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한반도 최북단으로 북·중·러 접경지이며, 북방경제의 핵으로 떠오른 곳이다. 냉전의 현장이자 지금은 치열한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북방경제권은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 극동, 한반도 북부를 포함한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 등 남·북·러 3각 협력의 교두보도 북방경제권과 두만강 하류와 닿아 있다. 이곳을 먼 타국 길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픔은 여전히 분단의 비애다.

18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닮아 있다. 그 때도 남북교류와 한라·백두 교차관광이 가시화되는 등 한반도에 해빙무드가 조성되고, 특히 제주가 남북화해 교류의 중심무대로 급부상하는 시점이었다. 당시 백두산 탐사가 도민사회에 큰 관심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어떤가. 기나긴 교착상태에 놓여있던 남북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는 시점이다. 올해 4월 역사적인 정상간 만남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평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기념식수하고 그 곳에다 남과 북을 상징하는 민족의 영산인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공수해 온 흙과 한강과 대동강에서 가져온 물을 뿌렸다. 남북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의 합토와 합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백두산·압록강·두만강 탐사도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희망을 안고 다시 장도에 오른 것이다. 18년 만의 탐사를 통해 그동안 변화한 모습을 확인하고, 한라산-백두산의 교차 비교연구, 협력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압록강 상류에 위치한 북한 혜산시.

김찬수(단장, 식물)·강순석(화산지질)·김완병(동물) 박사가 원년 멤버로, 고재원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장(역사문화)과 산악인 오문필, 채기선 화백이 합류했다. 우리는 18년 전 밟았던 그 길을 다시 찾았다. 백두산 서파(서백두), 북파(북백두), 천지, 대협곡, 장백폭포, 이도백하 장백산자연박물관. 한 걸음 더 내디뎌 압록강에 이어 두만강 천리 길을 달렸다. 찬란했던 고구려의 발상지 졸본산성(오녀산성)과 집안 국내성, 연변조선족들이 자치주로 삼아 터 잡고 살고 있는 중국 동북지방 길림성, 요녕성 구석구석, 그리고 두만강 하류 접경지역을 카메라에 담았다. 손에 잡힐 듯 강 너머 '지척의 땅'은 아직은 여전히 건널 수 없는 '분단의 땅'이다.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경계지어진 '지척의 땅'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백두산은 한민족에게 성산이자 신의 산이다. 한반도의 모든 산의 모태가 되는 조종산으로도 불린다. 백두산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길고 긴 역사의 주요 무대로 등장했다. 개국의 터전이자 우리민족의 정신적 근원으로 상징돼 온 것이다. 지금 우리 국토의 처음과 끝을 잇는 백두산과 한라산이 영산으로 숭배되고 있음은 제주도민들에게 백두산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집안시에 남아있는 고구려 옛 수도인 국내성터.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네 갈래다. 중국쪽으로 북파와 서파, 남파, 그리고 북한쪽으로 동파가 그것이다. '파'는 중국말로 언덕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번에 다시 서파와 북파로 백두산과 천지로 향했다. 셔틀버스로 정상 천지 코앞까지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코스가 북파다. 서파가 관광객에게 개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탐사단이 이곳을 찾았던 2000년 이 맘 때만 하더라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던 때다.

백두산을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인다. 백두산 산등성이에는 회백색, 미색, 미황색 등의 둥글둥글한 부석들이 발부리에 채인다. 백두(白頭)는 바로 흰색의 부석이 겨울철의 흰 눈과 함께 꼭대기를 덮고 있기 때문에 유래됐다. 우두머리, 하늘자리로 해석해 백두의 뜻을 더욱 상징화하기도 한다. 이 산을 우리 민족은 백두산이라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천지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장백산(창바이산, 長白山)이라 부른다.

장엄하고 웅장한 화산체, 화산체의 중심인 칼데라호 천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기묘한 고봉 준령,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임해(林海), 대협곡, 일년 내내 쏟아지는 장백폭포, 뜨겁게 솟아나는 온천은 백두산의 진가를 웅변한다. UN 산하 유네스코는 1989년 백두산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생물종다양성의 지속가능을 위해서다. 이 산이 특정 국가의 소유물이 아닌 전 인류의 보물임을 만방에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라산과 제주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래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반열에 올랐다.

지난 2000년 8월 백두산 탐사에 나선 한라일보 학술대탐사단.

백두산 너머 간도는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이다.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북간도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연길과 용정을 중심으로 훈춘, 왕청, 화룡지방을 일컫는데 두만강 북부에 위치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겨레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꼈다.

백두산은 겨레의 젖줄이기도 하다. 압록강과 두만강이 백두에서 시작돼 지금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며 황해와 동해로 흘러든다. 우리 탐사단이 이곳을 찾은 이유다.

막강한 하나의 제국이었던 고구려의 도읍지 환인 졸본과 집안 국내성이 압록강변에 위치해 있다. 졸본은 고구려의 첫 수도로, 지금은 중국 요녕성 환인지역을 일컫는다. 이곳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비류수)이 흐른다. 산성인 졸본성(오녀산성)에서 내려다본 혼강의 규모와 풍광은 압도적이다.

압록강변 너른 평지에 자리잡은 집안의 국내성은 지금은 현대 도시화되어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성터도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졸본에 이어 집안은 400여 년간 고구려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집안은 통구하와 압록강이 만나는 사이에 위치한다. 통구하는 압록강으로 합류한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만포시와 마주한다. 주목할 것은 졸본과 국내성, 압록강, 백두산이 하나의 맥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변대에서도 강의를 했던 도올은 "고구려 지역에서 고구려를 느끼는 데는 항상 우리 고대사에 대한 통찰과 혜안이 요구된다"고 충고한다.

백두산 자락에서 발원한 두만강변에서는 조선족 이주사는 물론 일제하 항일 독립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용정시는 중국 내에서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항일운동의 요람이자 민족시인 윤동주의 고향, 조선족 교육문화의 발원지로 자부심이 묻어난다. 가까운 거리에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가 있다. 조선족사회는 급격한 인구감소와 이탈로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한반도 가장 남단에서 온 우리 탐사단은 드디어 한반도 최북단에 이르렀다. 두만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동해에 이르기 전에 마주하는 3국 접경지는 냉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경계인 훈춘시 방천이다. 방천은 일안망삼국(一眼望三國)의 명소로 변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다. 방천 도로는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중국의 동북3성 전략과 육해상 인프라인 '일대일로'의 '중국몽'을 이곳에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두만강 철교 오른편이 북한 땅이다. 강 건너 북녘에는 노랗게 익어가는 옥수수가 지천이다. 특별취재팀



한반도 해빙무드 한라-백두 공동탐사 기대감


2003년 한라산硏·천지연구소 합의 이후 불발
원 도정 남북교류 신협력 5개 프로젝트 제시


비핵화 논의를 매개로 역사적인 남북간 해빙무드가 조성되면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제주발 남북교류다. 원희룡 도정이 내놓은 남북교류 신 협력사업은 모두 5가지다.

지난 2003년 북한을 방문한 제주도대표단(오른쪽 여섯번째가 우근민 전 지사)이 북측 천지연구소 관계자들과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라일보DB

중단된 감귤보내기 사업 재개, 한라-백두 교차관광 추진, 한라산-백두산 생태 환경보전 공동협력 사업, 제주포럼 북측 대표단 초청, 제주·북한 평화 크루즈 사업이 그것이다. 원 지사는 "제주도는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과 신뢰의 기반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지자체이며 12년을 중단 없이 교류했고 지자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북한의 초청으로 도민들이 단체로 4차례나 방북을 하기도 했다. 신뢰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원 도정은 향후 제주의 대북협력사업에 인도적 지원은 물론이고 제주와 북한이 서로 이익을 추구하는 상생공영의 의지를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2003년 우근민 지사가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 천지연구소와 회담을 갖고 한라산연구소와 공동 탐사활동을 벌이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한라산연구소는 2001년 백두산 천지연구소를 벤치마킹해 태동한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제주를 비롯한 지자체 차원의 대북 민간교류 중단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라·백두 공동탐사는 아직껏 실현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연구소는 도정이 바뀔 때마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해 지금은 명맥마저 끊겨져버린 상태다.

제주통일미래연구원 고성준 원장은 지난 2016년 개원 세미나에서 '제주에서의 통일준비, 무엇을 어떻게'란 발제를 통해 "제주는 세계환경의 중심지로 발돋움 하려는 '세계평화의 섬'으로서 통일을 만들고 가꾸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원장은 "통일시대를 염두에 두고 관광, 친환경농업, 청정산업, 문화, 교육에 걸쳐 제주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대한 꿈을 디자인해야 한다"며 "향후 남북교류 협력시 제주와 북한이 서로 상생공영할 수 있는 사업 발굴과 추진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제주가 남북 지역간 교류 협력의 교두보 내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도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을 맞아 설계중인 100년 대계 가운데 국내외 협력체계와 관련해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한라산과 백두산 공동학술탐사다. 한라산과 북한 백두산간 공동학술탐사는 평화통일의 상징적 슬로건인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생태환경보전 공동협력사업이다. '세계평화의 섬' 구현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부합된다. 제주입장에서는 세계환경수도 촉매제로, 북한은 백두산 환경보호 차원에서 윈-윈 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이다. 한라산은 유네스코에 의해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로 인증되는 등 생태환경적 보고로서 국제적 수준의 보전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그 노하우를 백두산의 생태환경 보전을 위해 전수해 주자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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