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골목길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골목길
  • 입력 : 2018. 09.19(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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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들어서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어린 시절에 바라보던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꽤 오래전에 "골목길 접어들 때면~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라고 시작하던 대중가요 '골목길'과 같은 가사가 지금도 쓰일 수 있을까. 아마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골목길'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야 할 듯하다.

골목길, 그 단어에서 전해오는 느낌은 친근하면서 동시에 쓸쓸하다. 원래 골목은 꼬불꼬불하고 모든 것이 한곳으로 모이는 깔때기와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만나고 인생의 모든 것이 압축되는 곳이었다. 가난과 슬픔이 모여 있고, 희망과 기쁨이 피어나는 곳이었다. 인생의 골목길, 골목의 인생길, 어린 시절 철없이 골목길을 뛰어다닐 때는 이런 의미를 몰랐다.

요즘도 나는 큰 대로변을 가다가도 굳이 낡고 비좁은 골목길을 찾아 걷곤 한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자궁 속이 그리워 넓은 방을 두고 자꾸만 벽장이나 다락방에 숨어들기를 좋아하듯이, 현대화 이전의 역사와 정서가 담겨 있는 오래된 뒷골목을 걷는 버릇이 있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나 뉴욕의 맨해튼의 5번가처럼 화려한 길은 내게 여전히 매력이 없고 낡고 후미진 골목길을 걸을 때 마음이 더 편하다. 가을의 우수에 젖은 채 걷는 프라하의 뒷골목과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의 뒷골목을 걸을 때가 정말 좋다.

피렌체의 뒷골목에서는 아직도 수백 년의 역사와 예술의 흔적이 그대로 간직된 곳이 많다. 겨우 사람 한두 사람만 다닐 정도로 아주 비좁은 골목은 흔히 만날 수 있다. 정말 길일까. 나오는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분명 들어갈 수 있는 길임이 분명했다. 엄연히 도로명도 있다. 유모차를 끌고 골목을 빠져나온 아이 아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묘기라도 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재미나게 웃는다.

오래된 중세풍의 건물 사이에 생긴 아주 좁은 골목길이기에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벽에 바짝 붙어야 했다. 그곳에서는 굳이 바삐 움직일 필요도 없고 재촉할 필요도 없다. 작동하는 에스컬레이터 위를 뛰어다닐 정도로 분주하고 요란한 일상에 함몰된 우리에게는 갑갑하고 편치 않은 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길이 아직도 버림받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니, 개발의 광풍에만 몰두하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매사에 역동적인 한국은 세련된 길을 뚝딱뚝딱 만들고 없애기를 잘한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좁고 낡은 길들은 길 취급도 못 받고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도로명 주소가 법정 주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물론 시골의 곳곳에서 유서 깊고 의미 깊은 아름다운 길 이름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오로지 길 이름 짓고 간판 붙이는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 길에 대한 애정은 쉽게 버리고 만 것이다. 번쩍번쩍 새롭게 빌딩을 쌓아 올리고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 속에서 낡고 비좁은 고색창연한 골목을 마주하는 일은 이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갈수록 오늘날의 도시는 점점 역사와 유서가 없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인간의 정서와 아름다움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뚝딱뚝딱 새롭게, 날마다 실용성과 편의성에 미쳐 순간의 화려함만 찬란하다.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삭막한 거리와 도로를 생산하는 도시는 마치 유행하는 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소비사회의 전략과 비슷하다. 과거의 것은 모두 후진적인 구닥다리 취급을 받아야만 한다.

오래된 골목길을 서성이면서 이 세상이 조금만 천천히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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