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문화광장] 운지당 성숲[聖숲]은 도시의 숨통

[문무병의 문화광장] 운지당 성숲[聖숲]은 도시의 숨통
  • 입력 : 2018. 09.18(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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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8년 일도1동 역사문화지 지명유래 조사 때문에 최근 '운지당'의 복원과 발굴 현장을 돌아보면서, 1996년 '제주시 옛지명' 조사 당시 시내 5개동, 일도, 이도, 삼도, 건입, 용담동과 도두, 오라동까지 조사하고 집필하던 당시에는 제주신당 연구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항목, '성숲'의 발견은 마을의 생태와 역사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마련해 줄 것 같아 다시 일도1동을 조사하게 되어 즐겁고 신명이 났다.

마을에는 돌, 나무, 바위, 바람, 꽃, 오름 같은 제주 자연이 아닌 제주 사람들의 냄새를 풍기는 문화경관들, 밭담, 올레, 환해장성, 신당처럼 제주사람들의 정신을 느끼게 하는 문화경관이 있다. 그 중 마을의 성소(聖所), 교회, 절간, 성당처럼 역사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도1동 본향당 '운지당' 처럼 역사와 문화를 한 공간 속에 다 지지고 있는 '거룩한 장소'로서의 성지(聖地) 또는 성소(聖所)를 '본향당' 보다도 종합적인 문화공간, 도시의 숨통인 '운지당 성숲'으로 개발되었으면 한다.

일도1동 '운지당-성숲'은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 올레에 신목으로 제주산 폭낭이 있는 숲이고 그 안에는 '운지당'이 있고, 이곳은 나를 낳고 나의 탯줄을 태워 묻은 '태 산 (사른) 땅, 본향당이며,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 일도동 사람들의 쉼터로서 일도동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운지당-성숲'으로 완성되었으면 한다.

제주시 일도1동 동문시장 뒤쪽에서 구 영락교회(지금의 정한아파트)로 올라가는 중간에 , '운지당 당터집'이 있다. 당이 있었던 곳은 이 집의 북벽에 지금도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이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하여 제단과 울타리가 있는 신목형·제단형·석원형의 신당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늘밭이다. 도시 중심에 이런 공터가 있다는 게 의심스럽다. 그러나 '당이 있던 곳은 무엇이든 함부로 할 수 없는 센 터'이기 때문에, 주택 짓기를 꺼리고 있을 것이다.

'운지당' 또는 운주당(運籌堂)은 신들의 영험이 아주 센 당이었다 하며, 조정하고 있는 신들은 동편 큰도안전(本鄕神), 서편 보조마누라(바 제또-皮膚病神), 일곱아기 단마실충(兒靈守護神), 간성할망(城郭守護神), 옹성할망(城郭守護神), 과원할망(果園守護神), 굽은 돌 아래 영감님(도깨비) 등이 있어 열 두 흉험과 조화를 부리는 신들이다. 운지당은 정해진 제일은 없었고, 날을 보고 생기에 맞는 날을 택일하여, 찾아가 치성하는 많은 신들이 좌정하고 있는 다신합좌형(多神合坐形) 도시형 본향당이었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에는 "제주읍 일도리 동성 안에 있다. 1566년 병인 명종 21년에 목사 곽흘이 동성을 세우면서 높은 구릉에 운주당을 창건하고 이산해가 제액하였다. 1682년 임술 숙종 8년에 목사 신경윤이 증건하였고, 1743년 계해 영조 19년에 목사 안건운이 증수하였다. 1892년 임진 고종 29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찰리사 이규원이 개건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원래 운주당(運籌堂)은 관아의 건물이었으나, 후에는 일도동의 마을 수호신을 모신 '일도동 본향당'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 운지당으로 올라오는 길을 '운지당질', 길 주변 마을을 '운지당골', 주변의 들판을 '운지당드르'라 하였다. 이 모두를 일도동의 '운지당 성숲'이라 부르자.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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