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들인 제주사랑상품권, 현금깡에 동원

세금 들인 제주사랑상품권, 현금깡에 동원
일부 업체 5~8% 싼 값에 매입한 뒤 할인 가격에 되팔아
발행 비용 매년 제주도 지원… 공적자금 투입 목적 퇴색
정부 뒤늦게 규제 추진 고향사랑상품권 활성화 법 제정
  • 입력 : 2018. 09.04(화) 18:06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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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제주사랑상품권을 도내 일부 업체가 현금으로 할인 거래하는 등 일명 '현금깡'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법적 장치는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뒤늦게 제주사랑상품권처럼 각 지자체별로 유통되는 '고향사랑상품권'의 현금깡을 차단하기 위해 법 제정에 나섰다.

 4일 본보는 도내에서 각종 상품권을 전문 취급하는 업체를 무작위로 골라 제주사랑상품권을 어떻게 판매하고 있는 지를 확인했다.

 A업체는 '제주사랑상품권을 구매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1만원권을 9800원에 판다고 답했다. 또 이 업체는 제주사랑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하길 원하면 1만원권을 9200원에 사겠다고 했다. 다른 업체도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다. B업체는 제주사랑상품권 1만원권을 9500원에 매입하고, 팔 때는 9800원에 판매한다고 답했다. 두 업체 모두 제주사랑상품권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가맹점'은 아니지만 상품권 할인 매입과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제주사랑상품권 현금깡은 인터넷 상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최근에도 제주사랑상품권을 할인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상품권 현금깡은 발행 주체가 누구이고, 또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합법과 불법이 갈린다. 지난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된 후 민간에서 발행한 상품권에 대해선 개인 간의 현금 할인 거래가 허용되고 있다.

 반면 강원도가 발행한 상품권은 가맹점에서 일정액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현금으로 교환할 수 없게 돼있다. 강원도가 조례로 상품권 현금깡을 원천 금지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가맹점에서만 현금 할인 거래가 차단된다.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데 이 법엔 개인 간의 상품권 현금깡까지 금지한다는 식의 조항이 없다. 가맹점이 온누리상품권으로 현금깡을 하다 적발되면 가맹점 취소와 함께 과태료를 부과 받는다.

 제주사랑상품권은 현금깡 유혹에 가장 빠지기 쉬운 쪽에 속한다. 법이나 조례를 통해 도입한 상품권이 아니다보니 현금깡에 대한 법적 규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상품권 발행도 민간 단체인 제주도상인연합회가 한다. 민간이 발행하지만 인쇄비, 봉투 값 등 제주사랑상품권을 만드는 비용은 매년 제주도 재정에서 나온다.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취지 아래 올해도 3억7000만원의 보조금이 투입됐다. 때문에 세금으로 발행한 제주사랑상품권이 전통시장과 상관없는 일부 사업자의 현금깡에 동원돼 이들의 이익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건 공적자금 투입 목적을 퇴색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공감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별로 도입된 고향사랑상품권이 현금깡에 이용되는 걸 막기 위해 벌칙을 둔 가칭 '고향사랑상품권 활성화 법'을 올해 연말까지 제정키로 했다"면서 "제주사랑상품권은 민간이 발행하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지만 보조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지자체의 위탁사무로 볼 수 있고, 따라서 법적 규제 대상에도 포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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