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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제주마을탐방] (16)삼성신화의 중심 '이도1동'
삼성혈·제주성지·오현단 등 제주역사 '오롯이'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입력 : 2018. 09.03.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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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이도1동 전경

19층 높이 호텔 들어선 1974년 제주개발 신호탄
개발신흥지구로 흥청거렸던 20~30년전 풍경 아득
문화의 거리로 재탄생 등 지역 정체성 찾기 분주





한때 이곳은 '광양벌'이라 했다. 삼성혈을 중심으로 한라산까지 허허로울 정도로 무심한 벌판이 이어지던 곳이다. 드문드문 민가와 함께 학교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들판은 밋밋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리고 1974년 제주여고가 있던 자리에 19층 높이의 칼호텔이 들어선다. 제주개발의 신호탄이 올려졌다. 이후 80년대를 거치며 몰라볼 정도로 팽창했던 시절도 있다. 학교들이 밀집하고 광양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금 잠잠하다. 시 외곽으로 차츰 개발이 이어지며 이도1동은 정체된 채 머물러 있다.

문화의 거리로 조성된 거리의 모습

탐라국시대부터 이어지던 마을 이도리는 1955년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며 이도1동과 2동으로 분리된다. 그래서 남쪽으로 동광로와 서광로를 경계로 나뉘고 동쪽으로 산지천을 중심으로 나뉘었다. 북쪽은 관덕로를 중심으로 하지만, 동문시장 일부가 편입되는 구조다. 서쪽은 중앙로를 중심으로 나뉘지만 중앙로 일부구간이 포함된다. 즉 구 남양방송국 주변의 마을 '새병골'과 오현단 서쪽의 '항골' 그리고 중앙로 건너 구 만수당 약국으로 이어지는 '물항골'등이 포함된다.

오현단 입구

이도1동의 중심에는 사적 제134호로 지정된 삼성혈이 있다. 탐라국의 시조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탄생지로 수 미터의 간격을 두고 난 세 개의 구멍에서 3신인(神人)이 솟아났다고 한다. 조선 중종 21년 이수동 목사에 의해 춘추봉제가 처음 시작되고 이후 담장을 쌓고 홍문을 세우며 성역화 사업이 이뤄졌다. 내부에는 전시실과 함께 삼성시조의 위패가 모셔진 삼성전이 있는데 이 곳에서 매년 춘기대제, 추기대제가 봉향된다. 또한 삼성혈에는 총 4기의 돌하르방이 있다. 크기가 187㎝로 성읍과 대정의 돌하르방의 크기가 134~141㎝인 것에 비하면 크고 우람한 편이다. 수호신이며 주술종교적 경계석으로의 소임을 다하려는 듯 부리부리한 눈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복원된 모습의 제주성지

삼성혈 사거리를 지나 오현단으로 가는 길에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걷기 좋게 인도가 생기고 그 주변으로 이도1동의 옛 모습이 새겨져 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삼성신화를 형상화한 암각화와 조형물 등도 설치됐다. 힘겹게 차를 피하며 걷기만 해야 했던 거리에 여유가 생겼다.

남문로터리 즈음에 다다르니 성곽이 보인다. 과거 방어의 목적으로 지어졌던 제주성지 일부가 복원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확한 축성연대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숙종 때 둘레 4700척, 높이 11척으로 확장 축조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인 탐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후 보수과 확장을 거듭하며 얼마나 많은 외침과 자연재해로 부터 견뎌온 세월이었을까?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25~1928년 제주항 확장공사를 빌미로 성벽은 허물어지고 바다를 매립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만다. 지금의 성곽은 당시 헐리지 않은 일부를 복원한 것이다.

광양당터의 표지석과 삼성신화의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

제주성지를 돌아 안으로 들어서면 오현단이 있다. 제주에 유배됐거나 부임해 왔던 5인의 현인을 위한 곳이다. 시작은 제주에 유배됐다가 사사된 충암 김정을 기리기 위해 터를 잡고 묘를 지었다가 지금의 자리에 이전해 온 후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까지 배향하게 됐다. 이로써 제주 최초의 서원인 귤림서원이 탄생하게 된다. 지금도 귤림서원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귤림서당이 운영되고 있다. 생활예절과 사자소학은 물론 제주의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들로 구성돼 있다.

홍살문이 서 있는 삼성혈입구.

이런 풍부한 역사유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상권은 예전만 못하다. 과거 병풍거리로 이름을 날리던 곳에는 명맥만 유지할 뿐 활기가 없고 오래된 시민회관은 이용률이 저조한 채 덩그러니 서 있다. 그래서인지 광양로터리를 중심으로 밤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화려한 조명이 연신 꺼지지 않는 시청거리와 달리 보성시장에서 중앙로로 이어지는 거리는 차분히 가라앉는다. 상업지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주택가도 아닌 이 거리의 정체성은 애매하다. 불과 20~30년 전에는 개발신흥지구로 흥청거렸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다.이제 이도1동은 다시금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과거의 유적들을 복원하고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고자 한다. 무조건적인 개발이 아닌 자신들의 뿌리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부흥을 모색 중이다. 이 곳은 제주의 배꼽과도 같은 곳이다. 그 위상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



[인터뷰] "문화도시로 거듭나고자"


이상민 주민자치위원장

과거에는 역사,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침체돼 있다. 삼성혈과 오현단 그리고 제주성지 등의 우수한 자원을 바탕으로 문화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 문화가 살아야 활기가 돋고 소비가 살아난다. 그동안 이런 부분들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시 걷고 싶은 거리라는 주제로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10월에 하는 모흥골축제 등을 통해 홍보 하고 있다.

또한 시민회관이 한때는 주요한 문화시설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노후 된 채 이용이 미미하다. 이를 어떻게 재생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성패가 달렸다고 본다. 복합공공건물로 재건축해 젊은이들이 거주할 수 있고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인터뷰] "정서 간직한 도시재생 필요"


김경수 주민협의체회장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지금의 정서는 간직한 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도시개발의 일부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수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시민회관처럼 낙후된 시설들에 대해서는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고 지역의 정신은 잘 보존하고 살려야 한다. 사회적 협동조합 등을 통해 역사문화 유적을 활용한 관광사업 등을 부흥시켜 지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역사적 자부심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 쓰레기, 주차문제 등은 소소한듯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대승적이고 합리적인 대안들이 도출돼야 한다.







[인터뷰]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고광석 동장

이도1동은 제주시 면적의 약 0.7%로 작지만 교통, 문화의 중심이다. 한때 인구가 팽창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3678세대에 7875명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이도1동'이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행정을 펼치고 있다. 특히 11월에 열리는 '제주국제아트페어'는 지역차원에서 이뤄지는 미술축제이다.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기획하고 동에서 행정지원을 통해 협력해 나가는 구조이다. 올해로 4회째 이어가며 비교적 자리 잡고 있다. 그 외에도 주민센터 부속건물에 상설 갤러리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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