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표류 기록 촘촘… '이익태 지영록' 보물된다

제주 표류 기록 촘촘… '이익태 지영록' 보물된다
문화재청, 국립제주박물관 소장 지영록 보물 지정 예고
"조선시대 표류민 정책 파악… 제주 최초 인문지리지"
  • 입력 : 2018. 08.25(토) 15:57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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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태 목사가 쓴 '지영록'의 서문(위쪽)과 김대황표해일록(아래).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지낸 이익태(李益泰)의 '지영록(知瀛錄)'이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3일 '이익태 지영록' 등 조선 시대 서책과 불교 조각, 신라 시대 금귀걸이 등 4건에 대해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국립제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익태 지영록'은 이익태(1633~1704)가 1694년(숙종 20년) 7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래 1696년(숙종 22년) 9월까지 재임기간 중의 업무와 행적, 제주 관련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서문에 의하면 이익태는 제주목사로 있는 동안 알게 된 제주도의 열악한 생활상과 누적된 폐단을 적음으로써 후세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지영록'의 '영(瀛)'은 제주의 옛 지명인 '영주(瀛州)'를 일컫는다.

'지영록'에는 이익태가 제주목사로 부임하기까지의 여정, 재임기간 중의 공무수행, 제주도 부임시의 행적과 그 과정에서 지은 시·제문·기행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주와 관련된 여러 기록물은 물론 조선인을 포함해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 표류(漂流)에 관한 기록이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이 중에서 1687년(숙종 13년) 제주사람 김대황(金大璜)이 출항 후 파도에 휩쓸려 베트남(安南)에 이르렀다가 귀국한 여정을 실은 '김대황표해일록(金大璜漂海日錄)'은 조선 시대 베트남 관련 기록으로 희소성이 있다.

특히 '지영록'에는 1653년(효종 4년) 제주에 표착했던 네덜란드 하멜 일행에 관한 기록이 '서양국표인기(西洋國漂人記)'란 이름으로 담겼다. 여기에는 하멜 일행의 제주 난파 지점이 대정현(大靜縣) 차귀진(遮歸鎭)의 대야수(大也水) 연변으로 적혀있다.

이로 인해 1997년 제주 한학자 김익수 선생의 번역으로 제주문화원에서 '지영록'이 처음 우리말로 출간된 이후 제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멜 표착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됐다. 하멜 표착을 기념한 빗돌이 세워진 곳은 안덕면 산방산 용머리해안 부근이지만 '지영록'에 따르면 대야수 연변은 지금의 대정읍 신도리 일대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이 책은 제주도의 문화와 지명 등의 연원을 이해하는 데에 실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외국인의 표류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 표류민 정책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했다. 또한 '지영록'은 앞서 보물 제652호로 지정된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의 '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1704년)보다 8년이나 빠른 것으로 연대가 가장 앞서는 제주도 최초의 인문지리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이익태 지영록' 등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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