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나무의 저주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나무의 저주
  • 입력 : 2018. 08.22(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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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사이, 폭염만큼 제주를 뜨겁게 달군 화제는 대천동 네거리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의 비자림로에서 파헤쳐진 삼나무 숲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의 하나로 선정된 곳이다.

필자도 숲길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보았다. 푸르고 아름답던 숲의 상당 부분은 베어지고 군데군데 앙상한 둥지만 남아 있었다. 소식을 듣고 모여든 뜻있는 시민들이 잘린 나무 밑 둥지를 중심으로 둥글게 손을 맞잡고 서서 울먹이고 있었다.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백 년 동안 자라온 나무를 오로지 길을 넓힌다는 이유로 이렇게 처참하게 잘라내야 하는가. 도대체 인간은 어찌 이렇게 무지하고 무도하고 폭력적인가. 어찌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개발에만 광분하고 있는가. 언론매체로 이 광경을 본 누리꾼들도 "도지사 탄핵만이 답이다"(연합뉴스 2018년 8월 9일자에 실린 댓글)라는 거친 항의의 글을 올렸다.

뒤늦게 나쁜 여론을 들었는지 제주도지사는 "비자림로에 아름다운 생태도로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로를 온통 파헤쳐놓고, 다시 이곳에 '아름다운 생태도로'(?)를 만들겠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중산간은 물론 제주 구석구석에 개발의 광풍(狂風)이 불어 제주는 죽어가고 있다. 제주도지사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둘러본 적 있는지 모르지만, 웬만큼 경관이 좋은 곳에는 다투어 건축물이 들어서기 위해 숲과 나무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고, 오름과 곶자왈은 훼손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은 자연을 이용 가치로 혹은 개발의 도구로만 함부로 대하고 있다. 산업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등장한 이래 인간은 자연을 오직 이용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자연을 자원의 도구로만 생각하고, '도구적 가치'로서 지배하고 개발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와 개발은 결국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무차별하게 물을 끌어내고, 곶자왈과 오름을 파괴하면 결국 인간은 조만간 엄청난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살아남는다고 해도 우리의 후손들은 물이 없고 나무가 없고 숲이 없는 제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결코 개발이 능사가 아니다. 자연은 소중히 간직하다가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그리스의 크레타섬은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면서 우리에게 신화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마도의 좁은 골목길은 지금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방문객들에게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 같았으면 그 골목길들은 좁고 답답하다면서 벌써 다 부서지고 도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세계 곳곳의 이름난 섬에서는 섬을 보존하기 위해 집 한 채 짓는 일에도 엄격한 심의와 규제를 거친다.

제주의 행정을 책임진 사람들은 부디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바란다.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삭막하고 메마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도민을 사랑하는 따뜻한 행정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공자는 진정한 위민(爲民)은 백성을 위하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자연을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겠는가.

제주 곳곳에 걸린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라는 현수막은 '사람과 개발만 있는 혼란 제주'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지금은 인간이 나무를 파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무의 저주로 인해 인간이 파멸하게 될 것이다. <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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