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나무가 거기 있었다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나무가 거기 있었다
  • 입력 : 2018. 08.22(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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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을 쫙 벌려 두 걸음은 걸어야만 둘레가 어림 잡히는 마로니에가 있었다. 두 줄로 나란한 가로수 사이로, 물길 놔두고 굳이 도로로 올라와 길 건너는 청둥오리들의 보행을 기다리느라 차들이 멈춰 선다. 아, 그 느긋한 뒤뚱거림이란! 암스테르담 인근 작은 마을, 천천히 크며 오래 행복한 나무가 거기 있었다. 내게도 큰 위안이 되던 아름드리들. 잠깐이었고 꽤 오래전 일인데 지금도 가끔, 품 넓은 그 나무가 보고 싶다.

몇 년 전, 남쪽 베란다 앞 키 큰 담팔수 한쪽 어깻죽지가 와장창 잘렸다. 아래층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아서였는데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나무는 이미 잘렸고 서운한 내 이유는 너무 가소로웠으니 벙어리냉가슴만 앓을 뿐.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온 집채보다 더 큰 아름드리. 토토로와 자매가 올라 뒹굴며 놀거나 쪼르르 앉아 오카리나를 불던 나무. 예쁘고도 푸근한 정령(精靈)토토로가 외로운 아이들 곁에 있어줘서 좋았다. 이층 우리 베란다로 나가면 마치 나무에 오른 듯, 담팔수의 우거짐이 내겐 딱 그만큼으로 좋았다. 아이처럼 철없다할 나의 만화는 무참히 찢겼다.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 "또 자랄 텐데. 뭘…" 한동안 전기톱 소리가 귀에 울려 어디든 가라고 등 떠밀고 싶었다. 이듬해에는 아예 베어졌다. 이따금 그루터기를 내려다보지만 기척이 없다. 둥근 밑동 크기의 쓸쓸함이 이층에서 땅바닥으로 툭 내려앉는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본 드론 샷은 정말 실화냐? 싶었다. 초록 숲을 파헤쳐 드러난 황토. 저렇게 거칠고도 네모반듯한 황당함이라니. 느리게 그 길을 가며 현장을 찍어 SNS에 올린 지인은 담벼락에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아…. 왜?!!!" 여러 번 그 길을 다녀 보았지만 불편함을 느껴본 적 없다. 혹여 누군가 그렇다 해도 확장만이 최선이었는지 납득이 잘 안 된다. 한라산 횡단로 '숲터널'이 계절 따라 굽이굽이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면, 곧게 뻗은 긴 비자림로는 사철 푸르게 솟은 삼나무 따라 높고 깊게 하늘로 오를 것만 같은 길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충분히 빛난다. 애초 벌목해 쓰려고 조성했다지만 이제 그 숲은 청정함 최상급인 또 다른 자원이다. 목재 이상의 제 몫을 톡톡히 하고도 남으리라.

일시 중단했지만 도로 확·포장공사는 불가피하다하고 무려 2400여 그루가 더 사라진다는데 인공림 삼나무니까 잘라도 된다거나, 일부 노선을 조정하고 대체가로수를 심겠다거나, 생태공원을 만들겠다거나, 이제 와 재검토한다며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는 말들은 공허하다. 왜 애써 제주에 와 올레를 걷고 오름을 오를까. 그 길이 주는 기쁨이 있어서다. 어딘들, 천천히 가도 좋을 길이지 않은가. 과잉관광으로 유명 관광지 몇몇은 억제책도 쓴다는데 그저 넓고 빠른 길이 우선이라면 안타깝다. 교통체증문제는 도심에 있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랩 걸(Lap Girl) 숲 안은 고요한데 아득히 올려다보면 흔들리고 있는 나무의 머리채를 본다. 너른 들판을 쪼개는 실개천처럼 하늘이 가늘게 흐른다. 시야 가득 물 안에 갇혀 흐르는 깨어진 초록빛 유빙 같기도 하다. 새새틈틈 빛이 쏟아진다. 크라운샤이니스(crown shyness)는 공생하기 위해 햇볕을 골고루 나눠 가지려는 나무의 전략이다. 경쟁하지만 간격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경계를 두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생각한다. 나무가 거기 있었다.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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