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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제주마을탐방] (15)제주 수박마을 '신엄리'
문화자원·자연풍광 풍부… 발전가능성 무궁무진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입력 : 2018. 08.20.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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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신엄포구

유휴공유지에 숙박시설·카페 늘어 해안가 '시끌벅적'
수박산지 유명… 양배추·브로콜리 등 월동채소 재배
말방아·왕먹돌 해안·연대·도대불 마을특색 고스란히




하귀를 지나 구엄 바닷가로 접어드니 렌터카가 줄을 잇는다. 애월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명성을 실감케 하는 풍경이다. 언제나 그렇듯 흐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짙푸른 바다와 멀리 해안 절벽이 만들어내는 경치는 감탄을 내지르게 한다. 바람이 부니 거친 파도까지 추임새를 넣어 제주바다의 풍모가 제대로다.

신엄리 소재 몽돌해변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는 서쪽으로 고내리와 하가리를 경계로 동쪽으로 중엄리, 남쪽으로 용흥리와 이웃마을로 접해 있는 곳이다. 과거에는 신엄, 중엄, 구엄을 합해 엄장면이라 했다. 이후 1935년 신엄리라 부르게 되고 이는 다시 신엄1구(신엄)와 2구(중엄), 3구(용흥)로 나뉘고 합치기를 반복하다 현재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과거 이 마을들의 공동체는 같다. 해안의 용천수를 길어다 먹으며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던 소박한 마을들이다.

하지만 최근 많은 지각변동이 생겼다. 변화는 해안도로의 명성만큼이나 크다. 해안과 마을사이의 유휴공유지들에 수많은 숙박시설과 카페들이 들어섰다. 그동안 땅이 거칠어 농사가 잘 되지 않았던 곳들이다. 소나 말을 키우던 목초지가 금싸라기 땅이 된 것이다. 절경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며 해안가 쪽은 늘 시끌벅적하다.

중요민속문화재 당거리동네말방아

그러나 마을 안의 변화는 미미하다. 다세대 주택들이 더러 들어서고 인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에 묵묵히 종사한다. 이 곳은 수박산지로 유명하다. 제주시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물량이 여기서 나간다. 과거 한창때는 육지부로도 많이 나갔다. 판매상이 공판장에 상주하며 공급하던 때도 있었다. 이 당시에는 여느 월급쟁이 못지않은 높은 수익을 올렸다. 다른 지역에서 감귤농사로 자녀들 대학공부를 시켰다면 신엄리에서는 수박농사로 대학을 보냈다. 그렇지만 하우스 수박이 보급되고부터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수박은 이 마을의 주요작물이다. 수박시기가 지나면 다시 양배추, 브로콜리 등의 월동채소를 심어 밭을 일군다. 다른 마을처럼 보리, 콩 농사는 쉽게 볼 수 없다.

신엄해안 절벽에 위치한 도대불

마을 안길은 미로처럼 골목들이 이어진다. 길을 잘못 들면 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 큰 차들의 통행은 어려워도 이웃과의 정이 오가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동네를 지나 콘크리트 빌라 옆으로 과거 모습의 말방아가 남아있다. 하가리의 '잣동리 말방아(제32-1호)'와 함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당거리동네 말방아(제32-2호)'이다. 예전 근처에 할망당이 있었다해서 당거리 동네라 불리웠던 곳에 말방아가 있어 그렇게 불린다.

바다를 끼고 있음에도 어업은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낭떠러지를 낀 해안의 환경이 녹록치 않고, 포구도 작은 편이다. 신엄포구는 '남도리개'라고도 한다. 신엄리 바닷가 절벽을 '남도리'라고 하는데 그 안쪽에 자리 잡은 포구이기 때문이다. 지형의 특징을 그대로 활용한 덕분에 인공 구조물을 많이 갖추지 않아도 활용가능했다. 지금도 방파제 위를 덮씌운 시멘트 외에는 없이 소박하다.

신엄리 해안가 도로변에 소재한 남두연대.

구엄리 염전과 중엄리 새물을 지나면 "자글락 자글락" 자갈소리와 닿는다. 신엄리 왕먹돌 해안이다. 해안절벽의 바위가 오랜 풍화작용을 거치며 몽글몽글한 먹돌이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물과 바람이 만들어낸 위대한 합작품이다. 제주시 탑동해안이 매립되기 전 이런 모습이었음을 어렴풋이 떠오른다. 지금은 이 곳 신엄과 내도 그리고 서귀포 예래동과 가파도 등에서만 일부 볼 수 있다.

해안도로 바로 옆으로 견고한 석조구조물이 보인다. 남두연대이다. 동쪽의 수산봉수와 서쪽의 고내봉수와 교신하던 연락시설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별장 6명과 봉군 12명이 배치돼 이 곳에 근무했다고 한다. 이는 과거자료의 고증을 거쳐 1977년에 개축한 것으로 3.9m의 높이로 돼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23-7호이다.

남두연대를 지나 서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산책로가 나온다. 이를 따라 가다보면 해안절벽위에 도대불이 있다. 옛 방식의 민간 등대이다. 밤에 고기잡이를 나갔던 어부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밝혀주는 등불이다. 여느 도대불이 포구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높은 언덕위에 자리한다. 이 역시 훼손돼 방치 된 것은 2009년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문화자원과 자연풍경을 고루 갖춘 마을 신엄리이다. 사람들의 공통된 열정만 투여된다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외부에서 유입돼 들어오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터를 닦고 살아온 이들이 조화롭게 정착할 때 마을에 신바람이 불 것이다. 다 같이 지혜를 모아보았으면 한다. <여행작가>

[인터뷰] 박수철 신엄리장 "유입인구와 효과적 조율 과제"

신엄리의 특징은 마을과 해안사이에 공유지가 많다는 것이다. 원래는 마소를 키우던 곳인데 이제는 이 곳이 개발돼 관광지가 되고 있다. 지금은 마을과는 좀 상반된 모습이다. 590세대에 1325명으로 인구도 늘고 있다. 외부에서 유입돼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마을이장으로 이를 다 조율하기에는 사실 역부족이다. 마을과 해안의 단절된 곳들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다 알 수가 없다. 계속되는 개발이 마을에 좋은 영향으로 되돌아오길 바랄뿐이다.

대부분이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한다. 워낙 수박이 유명한 동네라 여전히 수박농가가 많다. 하지만 예전 같은 수익을 내지 못한다. 요즘은 수박과 함께 월동채소를 수확해 이를 통해 매출을 맞춘다. 자구책을 위해 직거래장터도 해보고 수박홍보를 위한 축제도 했었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수박이 나는 시기에만 거리 노점 13군데를 내주어 판매한다. 이는 매년 추첨 등을 통해 선정한다.

마을주민들과 외부에서 새로 들어오는 분들과 어떻게 조율해야하는지가 문제다. 일례로 우리는 농사꾼이라 밭에는 밭 주변의 가로등이 밝으면 농작물에 피해가 많아 싫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길을 밝게 해달라는 민원을 한다. 농업용수의 관리 문제, 쓰레기문제 등등 생활패턴이 다르기에 각자의 요구가 다르다. 마을 자체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부분들이 많다. 행정의 도움과 지도감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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