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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픔을 넘어 미래로
[제주4·3 70주년 아픔을 넘어 미래로-14 / 제2부 완전 해결을 위한 과제] (6)역사교과서 등재 방향은
폭동의 역사에서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입력 : 2018. 08.14.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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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교육청이 지난해 12월 23일 개최한 '검인정 역사교과서 4·3집필기준안 연구 발표회'모습. 한라일보DB

제주4·3을 역사교과서에 올바르게 반영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 제주4·3이 올바르게 편입돼 이를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4·3희생자들의 가장 큰 염원이기 때문이다.

제주4·3은 냉전의 세계사적 전개와 한반도 분단이 교차하는 와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역사적 진실이 어떠했는가라는 진실규명작업이 이뤄지기도 전에 반공체제 하에서 편향적인 기억화가 강요됐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제주4·3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1954년 이후 1956년에 출간된 교과서에는 '남한의 독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괴뢰가 공산분자를 남한에 침투시켜 일으킨 폭동'이라고 서술했으며, 이후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정권 시기의 교과서에서도 '좌익에 의한 폭동'이라는 규정은 그대로 유지됐다. 반세기에 걸쳐 '제주4·3은 빨갱이가 일으킨 폭동'이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각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야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보고서가 확정되는 등 진상규명작업의 획기적인 전환을 맞았다. 그러나 교과서에서의 제주4·3에 대한 기술은 변화의 조짐만 보일 뿐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느 주제에 편제돼야 하나=그동안 대부분의 한국사 교과서에서 제주4·3은 좌우대립을 강조하면서 6·26전쟁의 전사(前史)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의 경찰발포를 시작으로 무려 7년여 동안 지속된 사건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북한 정권의 배후 조종에 의해 발생한 전쟁 예고편이라는 인상을 주게끔 축소·왜곡된 것이다.

이와 관련 제주4·3평화재단이 지난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민 제주 4·3사건 인식조사' 결과 제주4·3이 일어난 시기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9%가 '한국전쟁 발발 이후'라고 답했으며, '한국전쟁 발발 전'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8.3%에 불과했다. 나머지 22.7%는 '모른다'고 답했다. 제주4·3 특별법 제정 사실을 모르는 국민도 36.7%에 달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교육청이 나섰다. 2020년부터 교실에서 사용되는 역사교과서에 포함시킬 제주4·3에 대한 내용을 제주지역 여론을 모아 먼저 제안하자는 취지에서 '4·3 집필기준안 연구용역'을 실시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검정'역사교과서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2월 23일 제주도교육청에 열린 '검인정 역사교과서 제주4·3 집필기준안 연구 발표회'에서는 크게 3가지 방향이 제시됐다. ▷광복 이후 민족사적 과제가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수립이었고, 이러한 과제가 냉전의 세계사적 전개와 좌우 대립이라는 민족의 분열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웠다는 맥락 속에 제주4·3의 역사적 위상을 설정 ▷제주4·3에 대한 서술을 '제주4·3 사건 진상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진행 ▷제주4·3의 국가차원의 진상규명과 관련자의 명예회복 조치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드높이는 사례로서 특기(特記) 등이다. 이날 공개된 기준안은 올해 1월 교육부에 제출됐다.

▶올바른 제주4·3의 역사 배우나=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최근 완료한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에 따른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최종보고서에 제주 4·3사건이 2020년부터 적용되는 검인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8·15 광복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의 학습요소로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제주4·3을 통일정부 수립운동의 일환으로 성격을 규정했다는 점에서 큰 발전을 이룩했다고 보고 있다. 과거 제주4·3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또는 '6·25전쟁'에 배치돼 '정부에 반기를 든 사건'이나 '6·25전쟁과 관련된 사건' 등으로 성격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4·3평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반영으로 4·3의 원뿌리인 분단과 냉전, 1947년 3·1발포와 통일운동까지 폭넓게 기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향후 검인정 교과서를 집필할 출판사가 선정되면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가 그 준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 박명림 연세대교수 박찬식 제주학센터장 양윤경 4·3유족회장

특별취재팀=이윤형 선임기자 표성준 차장 송은범 기자

역대 교과서에서 제주4·3 서술 어땠나
제주4·3 집필기준안 연구발표 자료집 분석
정치적 사건·정권 성향과 논리에 따라 변화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제주4·3'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정치적 사건 혹은 정권의 성향과 논리가 교과서 내용에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발표된 '검인정 역사교과서 제주4·3 집필기준안 연구 발표 자료집'을 통해 역대 역사교과서에서의 제주4·3 관련 서술을 분석해봤다.

▶1956년~2001년=1993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검정 교과서든 국정 교과서든 한결같이 제주4·3을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 집단에 의한 폭동이나 반란이라고 서술했다. 1956년 탐구당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국사'에서 '남한의 독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괴뢰가 공산분자를 남한에 침투시켜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명시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제주4·3은 '폭동'으로 학생들에게 교육됐다.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역사 바로세우기'작업이 시작되면서 4·3의 역사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1994년 제6차 교육과정에 의거해 제안된 '국사교과서 준거안 시안'에서 '제주4·3항쟁'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보수세력과 언론이 "북한의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응하면서 결국 '제주도4·3사건'으로 쓰여지게 됐다. 다만 1997년 국정 교과서에서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도 희생됐다'는 표현이 최초로 등장했다.

▶2002년~2009년=제7차 교육과정 첫 해인 2002년에 나온 교과서는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출간된 것이지만 서술은 여전히 빈약했다. 4·3을 공산주의자들이 사회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일으켰다는 내용은 사라졌지만 '소요사태'나 '좌우 대립이 격화돼 일어난 사건'으로 간단히 규정하는 데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2003년 출간된 6종의 검정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4·3을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했고 분량도 많아졌다. 6종의 검정 교과서 대부분은 4·3의 원인을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으로 봤고, 그 과정에서 주민의 희생이 있었으며, 제주도 일부 선거구에서 총선거가 시행되지 못했음을 밝혔다.

▶2009년 이후=2008년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4·3에 대한 서술은 다시 위축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4·3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만 쓰여지고 구체적인 사건의 원인과 과정, 사후 진상 규명 등은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가해자가 누군인지 밝히지 않고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등으로 주민이 희생 당했다'고 서술해 2003년 검정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보다 가해자를 더 애매모호하게 처리했다.

▶2016년 폐기된 국정교과서=박근혜 정부는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공표한 후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6년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를 출간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 교과서들은 보급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폐기된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중학교 '역사'에서는 '제주4·3사건이 발생한 제주도 일부지역에서는 선거가 무산되기도 하였으나'라고 단 한 줄로 언급했고, 사건에 대해선 각주 처리해 하찮은 사건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어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지금까지 제주4·3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원인인 '역대 정권의 탄압과 은폐'가 아닌 '남북한 대치 상황 때문'이라고 축소·왜곡해 기술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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