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동네 서점에서 책을 판다는 것

[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동네 서점에서 책을 판다는 것
  • 입력 : 2018. 08.01(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에서 서점을 한다고 하면 열이면 열 "아~ 북카페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 북카페 아니고 서점이요."라고 다시 정정하면 "아, 네. 근데 왜 커피는 안 파세요?"라고 되물었다. 언제부터 서점에서 책만 파는 게 이상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점을 하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커피를 같이 팔아야 하나'라는 고민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것만 좋아했지 파는 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수익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제주도에 이렇게나 근사하고 멋진 카페가 많은데 커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그들과 경쟁해서 커피를 더 잘 팔 자신도 없다. 설령 운이 좋아 커피가 잘 팔린다고 하더라도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열고 싶었던 서점이 북카페가 되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서점에 오는 손님들에게 우리는 음료가 없으니 외부 음료 반입이 가능하다고 하면 대부분 "진짜요?" 하면서 놀란다. 대신에 안쪽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우리 서점에서 산 책만 읽을 수 있고, 이곳에서 산 책(우리 서점에서 책을 사면 서점 도장을 찍어드린다)은 언제든 와서 읽을 수 있다고 하면 독특한 콘셉트라는 얘기가 나온다. 커피를 파는 집에서 커피를 사오고 책을 파는 집에서 책을 사서 읽으라는 게 뭐가 독특한 콘셉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음료를 사먹고 책은 공짜로 읽는 북카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 얘기가 꽤나 신선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하물며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서점까지 너무 만연해 있다 보니 어떤 면으로는 책을 산 사람들만 우리 서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이 개념이 야박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 서점으로 유통되지 않는 책들만 취급하는 소위 독립 서점도 아니고 타깃이 확실한 특정 분야만 취급하는 전문 서점도 아니다. 교보문고처럼 A부터 Z까지를 취급하며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대형 서점도 아니고 인터넷 서점처럼 책값을 할인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작은 동네 서점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동네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다들 큐레이션 얘기부터 꺼내는데, 나는 그건 대단한 차별점이 아니라 동네 서점의 태생적 한계(공간과 정보의 한계)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동네 서점의 역할과 존재 가치가 책의 큐레이션, 즉 '좋은 책의 발견'에 있다는 의견은 일부 동의하지만, 실제적으로 동네 서점이 유지되기 위해선 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독자가 자신이 몰랐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것과 그 책을 바로 이곳에서 선택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네 서점에서 발견한 책을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는 교보문고나 할인에 무료 배송까지 해주는 인터넷 서점에서 사는 것까지 막을 방도는 없다는 얘기다.

동네 서점들의 진짜 고민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좋은 책을 발견하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그 책을 이곳에서 선택하게 할까가 되어야 한다. 나 역시 아직도 고민 중인 문제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새로 생기는 동네 서점만큼 문 닫는 동네 서점들이 늘어나는 것은 동네 서점의 존재 이유를 너나 할 것 없이 '큐레이션'에만 한정 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점은 궁극적으로 책을 팔아야지만 존재 가치가 생기는 상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서점을 방문하는 사람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05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