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신의 하루를 시작하며] 새 풍속도(風俗圖)

[강문신의 하루를 시작하며] 새 풍속도(風俗圖)
  • 입력 : 2018. 07.25(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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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형, 점심 때, 서귀포 들녘마을 어느 식당엘 가도,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선 친구들끼리 대화도 "어디 애니?" "응, 베트남" "일 잘 하냐?" 대게 이러합니다. 0형, 언제부터인가 이 서귀포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오랜 세월 혼신으로 가꿔온 그 감귤이 기어이 부(富)를 일궈낸 결과입니다.

그 근로자들 식사는, 남녀 공히, 밥 두 공기쯤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웁니다. 마치 우리의 60년대 허기지요. 그 60년대…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 고장에선, 일본 가서 돈 벌어 잘 살아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도 일본에서 일하며, 우리 7남매를 키워내셨어요. 당시 일본 갔다 온 사람들의 말은 하나같이 "여기서도 그렇게만 열심히 일하면 다들 잘 살 수 있다"였습니다. 그 일본인들이 그렇게도 악착같이 일하더란 얘기입니다.

이제 이 서귀포가 그때의 그 일본 대판이 된 것입니다. 각국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속속 몰려드는, 참으로 기회의 땅이 된 것이지요. 노령화로 일손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이곳 상황에서, 그들은 실로 젊은 피 수혈인 것입니다. 일도 잘 합니다. 논산훈련소 신병들처럼,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말은 안 통해도, 손짓 발짓만으로도 눈치껏 잘 합니다. 꿈에 부푼 젊은 그들이, 그 시절 우리 아버지처럼 이를 악물고 나서는 것입니다. 0형, 그런 그들이 아름답습니다.

어떤 이들은 근로자 어쩌구 말들을 하지만, 다루기 나름이지요. 일단 일을 시켜놓고 가만 지켜보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고치고, 잘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기도 합니다. 몇 달 지나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더러 나태해지거나 요령을 피우는 경우가 보이면, 그 훈련소 조교처럼 큰소리 한 번 꽥! 칠 필요가 있어요. 그들에게 긴장을 풀지 않도록, 초심을 잃지 않도록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 일본 계실 때, 주인 잘 만나서 일 잘 하고 있다는 말을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어린 마음에도, 그 주인이 얼마나 고마웠던 지요. 오래 일하던 여자가 귀국했다 다시 오면서 동생 둘을 데리고 왔어요. 세자매가 같이 일을 합니다. 또 한 여자는 귀국했다가 앳된 며느리와 함께 왔어요. 일이 편할 리야 없겠지만, 되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웬만해선 말을 안 하지요. 저들 중 한 사람을 리더삼아 스스로 저들을 이끌도록 합니다. 이 불볕더위를 묵묵히 헤쳐 나가는 그들이 대견합니다.

0형, 이제 이 석파농산(石播農産)에 외국인들까지 북적대는 게 좋습니다. 무시로 웃고 때론 저들끼리 좀 다투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하면 그런대로 좋습니다. 저들과 손짓 발짓 눈짓으로 엮어갈 내일이 흥미로운 것입니다.

0형, 봄부터 시작한 비닐하우스 신축공사가 이 여름에 겨우 끝났습니다. 그래도 올해 짧은 장마의 그 장맛비를 놓치지 않았어요. 빗속을 서둘러 귤나무를 다 옮겨 심은 것입니다. 굴채하고 강전정하고 심은 후 잘 밟고… 완벽을 기하노라 했어요. 사막의 어느 개구리 족은, 어쩌다 소나기 오면 그 짧은 동안에, 교미하고 알 낳고, 올챙이 개구리를 다 키워 낸답니다. 그렇듯 우리도 서둘렀던 것이지요.

0형, 경황없는 날로도 여름은 오고, 더위는 또 점령군처럼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겹고 겨울 땐, 시선암(詩禪庵)의 돌탁자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잡목 숲 그 노송(老松)들의 고요를 한 바퀴 빙~도는 길에, 마주친 산노루 눈빛이, 그리움처럼 참 맑았어요.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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