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의 문화광장] 제주 해녀회 vs 유럽 길드(Guild)

[이한영의 문화광장] 제주 해녀회 vs 유럽 길드(Guild)
  • 입력 : 2018. 07.24(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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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길드(Guild)는 중세도시의 성립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상공업자의 동업자 조직을 일컫는다. 이들은 동업자끼리 엄격한 규율을 통해 과잉출혈경쟁을 방지하고, 독점적 영업권으로 신분의 안정을 꾀하며, 노동 조건을 통제함으로써 구성원들의 평등과 복지 실현을 목적으로 조직한 동업자 조합이었다.

아래 길드의 규율을 살펴보면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과 전문성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컸으며 구성원의 평등과 복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 ▷원료는 공동으로 구입하고, 선매(先買)를 금지한다. ▷장인이 고용할 수 있는 직인(職人)과 도제(徒弟) 수를 제한한다. ▷사용하는 도구의 종류와 수를 규제한다. ▷노동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며 조조(早朝) 및 야간 노동을 금지한다. ▷반드시 품질검사를 받고 합격하지 않은 물건은 판매할 수 없다. ▷공정가격을 정해서 판매한다.

이들은 단순한 동업자 조직으로만 끝나지 않고 공동제사(共同祭祀), 공동주연(共同酒宴), 상호부조(相互扶助)를 통해 구성원간의 공유문화를 만들어 그 조직을 더욱 견고히 하고 세력을 넓혀갔다. 길드는 역사적으로 봉건사회에 등장한 신흥세력으로서 유럽의 기술발전과 경제부흥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제로의 전환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상에 양면성이 존재하듯, 길드의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인 장인의 권리 남용으로 다음과 같은 폐단이 나타났다. 길드 조합원만이 해당 상품의 제조 판매가 가능한 영업독점권은 길드에 가입되지 않은 기술자들을 차별하고 박해했으며, 장인-직인-도제 세 계층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위계의 도제제도는 악용되어 수련생인 도제와 직인의 노동착취로 이어졌고,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규 가입 희망자의 출신 제한과 가입비 인상을 통해 진입장벽을 쌓는 반면 조합원 지위를 세습화 하는 등 본래 길드의 결성 취지와는 크게 벗어났다.

훗날 이들 조직은 외부와의 폐쇄성으로 인해 "길드는 자유무역을 방해하고, 기술의 혁신을 더디게 하며, 길드간의 정치적인 권력 싸움이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전 필자는 '청산바당 제주해녀학교'에서 '제주해녀의 보존과 전승'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수강생의 "저는 제주 출신인데요. 정말 해녀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해녀회에서 받아주질 않네요. 제주해녀가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명맥이 끊어진다고 들었는데 이건 조금 모순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제주해녀문화보존회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도 명쾌한 답변이 어려웠다. 돌아오는 길 내내 현재 제주 해녀회의 모습과 과거 중세 유럽 길드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 되는 것은 왜일까?

제주해녀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여성 노동 공동체로서 과거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의 수탈에 항거해 항일잠녀투쟁을 이끈 사회개혁가였고, 어려운 시절 공동조업을 통해 그 수익으로 마을과 학교 등 지역공동체 발전에 이바지했던 지역 공헌가였으며, 60~70년대 일본에 해산물을 수출한 대한민국 수출의 역군이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제주해녀가 사회 일원으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당당하고 역동적인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제주 해녀회 스스로 미래의 해녀상을 정립하고 앞으로 제주해녀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대한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한영 비영리법인 제주해녀문화보존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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