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할아버지상어 울고 있어요"

[이소영의 건강&생활] "할아버지상어 울고 있어요"
  • 입력 : 2018. 07.18(수) 00:00
  • 김현석 기자 hallas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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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사이 유행이라는 '상어 가족의 하루'라는 동요를 가만히 듣다 보니 독특하게 느껴지는 노랫말이 있었다. 공놀이 하는 아기상어, 화장 하는 엄마상어, 청소 하는 아빠상어 등, 가족들이 각자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명랑한 노래가, "할아버지상어, 울고 있어요. 상어 가족의 하루."라며 끝을 맺는다. 왜 할아버지 상어는 아무 것도 안하고 우는 걸까? 궁금해졌다. 이 노래에 가사를 붙인 사람이 어떤 뜻으로 그런 가사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할아버지상어가 우울증에 빠지신 건가 싶다.

일반적으로 네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는 생애에 한 번은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우울증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질환이다. 어느 나이에나 생길 수 있지만 대체로 20대에서 40대 사이에 첫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할아버지나 할머니 나이가 됐을 때 생기는 우울 증상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노년기 우울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노년기 우울증은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삶을 돌아보고 보람을 느껴야 할 나이에 만족감과 행복감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나이가 들며 찾아온 각종 신체적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또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일으키거나 치매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을 때의 건강과 활력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늙을 老자를 써서 노인이라 칭하기가 아리송한 분들이 훨씬 많지만, 의학적으로는 만 60세에서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본다. 평생 일과 가정에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건강히 살아온 많은 분들이 나이가 들며 찾아온 우울 증상을 본인 스스로도 질환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기가 쉽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또한 단순하게 '나이가 들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마는 경향이 있어 우울증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방치되곤 한다.

일반적인 우울증과 대비되는 노년기 우울증의 특징은 본인이 젊었을 때 우울증을 앓았거나 가족 중에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 없는데 예기치 않게 발생한다는 점, 환자들의 연령이 높다보니 동반하는 다른 질환들이 많다는 점, 상대적으로 덜 심한 우울 증세가 만성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등이 있다. 그리고 가장 주목해야 할 점 중의 하나는 인지 기능 장애가 더 눈에 띄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치매를 진단할 때에도 가장 크게 감별해야 할 질환 중의 하나가 우울증일 정도로 우울증으로 인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일이 잦다. 본인 혹은 가족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이게 혹시 치매가 아닌지, 혹시 노년기 우울증은 아닌지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우울증이 치료되면 감퇴됐던 인지 기능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은 노년기 우울증과 강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외 만성적 내과 질환이 있는 경우 우울증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향후 치료 성적과 큰 관련이 있기 때문에 노년기 우울증의 치료는 몹시 중요하다.

혹시 상어 동요의 울고 있는 할아버지 상어처럼 우울해 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당부하고 싶다. 내 마음 속에 들려오는 부정적인 소리들은 내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나에게 거는 말이라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고, 무기력하고, 앞으로 희망이 없는 것만 같은 기분은 우울증이라는 병의 증상에 불과하고, 그 병은 치료 하면 나을 수 있다. 할아버지 상어가 울지 말고 건강히 웃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소영 미국 조지타운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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