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선의 문화광장] 엎드려 산을 보는 도시

[변명선의 문화광장] 엎드려 산을 보는 도시
  • 입력 : 2018. 07.17(화) 00:00
  • 김현석 기자 hallas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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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것도 형편없는데 감상하라 한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미술은 본인만 모르는 언어가 있는 것 같다며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저 그러한 불통의 시간을 함께 걷고 있었고 누구는 그것을 넘어서고 있을 뿐이다. 작품의 암호를 각자 방식으로 해독한다. 무엇 때문에 감성의 발견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상징의 형식은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더 깊어졌다. 화두는 소통이라 했지만, 불통했던 향유의 시간이 당장은 편하지는 않다. 차차 이해되고 끄덕여지는 공감, 그 지점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의 삶은 감성이 구석구석 관여한다. 식당 안 공간도 배치와 시선의 흐름, 주가 되는 색조와 음식의 색과 맛, 모두 감성을 자극한다. 작고 디테일한 것에서 부터 거시적인 도시디자인의 시각까지 연결하는 것, 집요하게 핵심을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다. 이 제주도라는 독립된 문화의 한 점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감성적인 메시지를 품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작년부터 논의되었던 서귀포다움에 대한 고민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것이 단편적인 단어 하나, 색이나 형태를 이야기하거나 혹은 '서귀포다움은 무엇이다'라고 몇 단어의 조합으로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흥미를 가져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고민들이다.

도시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인다. 유럽엔 수 없이 많은 고호미술관이 있다. 그중 그의 정신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고호 페러디미술관은 흥미롭다. 고가의 고호그림은 없지만 이슈가 바뀔 때 마다 그곳엔 어떤 패러디작품이 걸려있을까 궁금하다. 미술관은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서 생동감있게 움직이고 있다. 공간의 감동을 위한 철학적 고민을 전제로 나아가고 있다. 테시마 미술관의 비와 바람과 온도 그 모든 원초적인 인간의 감성을 전시하는 공간전의 창의적 발상처럼, 더 넓은 의미의 도시의 감성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파리는 이미 미술관의 기능을 잃었다. 감동은 커녕 그저 눈도장 한번 찍기도 힘든 인파다. 모사하여 그린 모나리자를 보려는 줄은 끝없이 길다. 진품을 수장고에 놓고 보조로 만든 작품을 보며 우리는 왜 놀라워해야만 하는가. 휴가철 많은 비용의 미술관투어에 회의적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또 다시 도시, 파리를 꿈꾼다. 가고 싶은 도시로 가슴에 두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도시의 가치를 중하게 여겨 만들어 갔던 곳이기에 도시 공간 안에서 감성 즐기기를 꿈꾼다. 걷게 만드는 거리, 이야기를 하며 걸어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매력 도시이기 때문이다. 걸어 다니며 감지하는 사람마다의 시선 속, 생동하는 도시가 매일 재탄생한다. 그래서 영감을 가지고 돌아가는 도시가 된다.

서귀포는 사색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두 군데가 있다. 거리를 걷다보면 나지막하게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직은 친근한 거리다. 노인이 이 거리를 걸어도 어색하지 않고 정류장에 기다리는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역시 정겹다. 전체 도시의 풍경은 "낮게 엎드려 어디서든 한라산을 볼 수 있는 도시"다. 이것이 서귀포다움이라는 생각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한라산은 높은 자연의 기상을 뽐내라. 마을은 자연에 경배하며 납작 엎드려 한라산을 바라볼 테니. 이것이 진정 우리만의 감성의 핵심인 것이다. 수십만 년 전 우리 앞에 우뚝 선 한라산을 높은 건물로 가두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구체적 의지는 제도적 실천에서 나오기에 앞서 내 지역의 감성을 읽어내는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한다.

<변명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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