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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당신의 퀘렌시아는?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입력 : 2018. 07.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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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은 고달프고 힘들다. 각박한 삶과 고달픈 세상에 지친 인간은 갈수록 자신만의 피난처와 안식처를 찾는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최근 들어 이곳은 '퀘렌시아(Querencia)'라는 새로운 용어로 불린다. 말하자면 인간 내면의 성소(聖所)에 비유될 수 있는 피난처나 안식처라는 의미를 지닌다.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퀘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 본능, 안식처'을 뜻하는 말로, 스페인에서 흔한 투우경기에서는 투우사와의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이른다. 이는 경기장 안에 확실히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으로, 투우사는 퀘렌시아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투우장의 소가 퀘렌시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현대인들도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길거리의 카페, 해외여행, 공연장, 개인 휴식처 등과 같은 퀘렌시아의 공간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이렇게 퀘렌시아는 개인적으로는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집단적으로는 인간이 영원히 그리워하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개인과 집단이 가정과 직장이 아닌 또 따른 공간에 퀘렌시아를 갖기를 소망하는 것은 현대인의 삶이 그만큼 힘들고 각박하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성들은 조용히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 생각에 집중하며 틀어박혀 지내는 반면, 여성은 다른 이들과 속 시원히 얘기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어쨌든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퀘렌시아와 같이 내 아픈 삶을 위로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갖기를 원한다.

미국 작가 E. 헤밍웨이의 소설 공간은 언제나 삶과 죽음의 극단적 기로에 놓여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태양의 이쪽, 밤의 저쪽'으로 가득 채워진다. 단편소설 '오후의 죽음'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투우는 퀘렌시아에 들어서면 자신을 구해줄 생명의 벽이 서 있는 것처럼 안정을 찾는다고 표현된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투우와 삶의 유사점을 설명하면서, 투우사가 절박한 상황 하에서 인간적 위엄을 유지하는 규범을 지킴으로써 죽음을 초월하는 힘을 얻게 된다고 진술한다.

이렇게 현대인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뒤따르는 것이어서 많은 경우 꿈으로만 그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 자신의 삶을 위한 공간을 가지거나 생각하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퀘렌시아는 단순히 수동적이고 물리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곳만은 아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그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너무나 많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협소한 울타리 밖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공감'은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을 위무하는 공통 감각이자 사회적 형식이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 세상과 타인의 고통을 보편적인 것으로 쉽게 간과해 버린다면 진정한 인간의 심성을 지닌 것이라 하기 힘들다. 이 세상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식하는 마음에서 인간은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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