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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격렬했던 민중항쟁"
서중석 교수 한국 현대사 국제 포럼서 주장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입력 : 2018. 07.03. 18: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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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격렬했던 민중항쟁으로 보고 이같은 관점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대학교수는 국내외 한국학과 교수 및 국내 4·3 연구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3일 열린 한국 현대사 국제포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서 교수는 제주 4·3 특별법에 명시된 4·3의 정의에 대해 "항쟁적인 성격이 보이지만 대규모 희생자의 발생에 초점을 두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4월 3일 일어난 무장봉기에 대해 "전술 전략이 취약하고 대규모 살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지만 봉기와 같은 조직활동이 자주독립·정의의 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항쟁적 성격 때문에 4·3봉기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이어 4·3을 민중항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주민들의 저항이 장기적으로 이어졌다는 점과 주민들이 토벌대 편에 서지 않았던 점을 들었다.

 이와 더불어 서 교수는 4·3 당시 대규모 주민집단학생이 발생할 수 있던 요인으로 군경 및 미군정 내부의 친일파가 반공주의와 결합해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쏘아 없애는 3광작전을 펼친 점을 꼽았다. 또 미군정의 실정과 분단으로 4·3이 발발하고 4·28평화회담을 깨는데 미군이 주요한 역할을 했던 점, 섬이라는 고립된 지리적 환경 속에 해안이 봉쇄되고 지역언론사, 중앙 언론사가 탄압을 받은 점 등도 대규모 집단학살이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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