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빨대를 먹을래요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빨대를 먹을래요
  • 입력 : 2018. 06.20(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고래가 죽었다. 죽은 고래 뱃속에 들어있던 80여장의 비닐봉지는 고래만한 충격이다. 사실 고래만이 아니다. 다 헤어진 사체에 플라스틱조각만 남긴 새, 폐그물에 갇혀 기형으로 자라는 거북이, 비닐 뒤집어쓴 황새, 꼬리에 면봉을 감고 있는 해마. 인간 말고 누가 순환되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는가. 모두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저도 자연의 일부로 깨끗이 돌아간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인간이 제일 유해하다.

올해 '세계환경의 날'의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의 종말'이었다. 한국은 '플라스틱 없는 하루'를 내걸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주제이다. 플라스틱은 100년 전쯤 태어났다. 너무나 편리해서 쉽게 포기가 안 된다. 분해되는데 500년이나 걸리고 성분은 반영구적이라니 100년 전 조상님이 쓴 플라스틱도 아직 우리 곁을 떠돌고 있다는 말이다. 매년, 전 세계 인구가 5000억 개의 비닐봉지를 쓰고 최소 8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간다. 분리수거를 한다고 하지만 일부는 걸러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분해되어도 아주 작은 조각으로 남아 쌓여만 간다. 바다를 떠도는 미세플라스틱을 플랑크톤이 먹고 작은 갑각류나 어패류가 먹고 큰 물고기가 먹고 인간이 먹는다. 우리도 비닐봉지 먹고 죽은 고래처럼 모르게 쌓인 미세플라스틱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의 펑씨 가족은 쓰레기재활용공장에서 일을 하며 산다. 사방천지가 세계 각국에서 버린 비닐쓰레기다. 쓰레기를 태워 밥을 짓고 오염된 하천의 물로 몸을 씻으며 거기서 건진 죽은 물고기를 먹는다. 엄마는 쓰레기더미에 앉아 젖을 물리고 아이들은 그 산에서 구르고 뒹굴며 뛰어논다. 내가 버린 비닐쓰레기가 거기서 나풀대는 것만 같다. 유독가스를 뿜는 검은 연기와 오염된 폐수로 화면 너머의 내 숨이 다 막힌다.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쓰고 버리며 누군가는 분류하고 재활용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고 단순히 말하기에는 펑씨 가족의 지난한 생존문제 이상의 답답하고 두려운 진실이 숨어있다. 버리고 나니 내 일 아닌듯하지만 무심히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딘가에 쌓여있다는 것. 오염된 공기와 물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 이제 우리의 일상은 미세먼지에게 물어보고 우리의 건강은 미세플라스틱에게 물어보리라는 것.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의 반을 가져가던 중국이 급기야 수입을 전면 중단하자 이웃인 우리나라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감독의 말처럼 쓰레기 수출은 환경문제를 떠나 도의적, 법적 문제다. 내 나라 밖으로 보내버리면 끝이 아니라 어떻게든 자국 내 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고민하면 애초에 발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궁하면 통하리라. 최근 EU는 너무 가볍고 작아 재활용도 안 되는 면봉·빨대·커피스틱·풍선막대 등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대신 종이빨대나 식용빨대가 꽂힌다. 스티로폼 대신 종이완충재와 보호대를 쓰는 가구회사도 있다.

이런 중에도 일부 커피전문점에서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컵홀더 대신 종이컵을 하나 더 끼워주는 마케팅이 유행이란다. 빼자고 하는데 더 얹는 우습고도 슬픈 광경. 컵을 드는 당신이 원하면 하나에 하나를 더 얹을 것이다. 빨대 꽂힌 음료 플라스틱 컵을 제대로 잘 버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겠다. 그나마도 다행이지만, 텀블러로도 부족하다. 소소하지만 빨대와 케이크 칼과 아이스크림 수저를 빼고, 작은 불편함을 기꺼이 종이 상자나 시장바구니에 담아오자. 덜 쓰는 게 최선이다. <김문정 시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79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