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함께라야 좋은

[이나연의 문화광장] 함께라야 좋은
  • 입력 : 2018. 06.19(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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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도 중반을 넘어가는 내게도 여전히 처음인 일들이 많고, 아직도 모르는 일 투성이다. 최근엔 20대 초중반 동료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 10여년전의 나를 자꾸만 소환하게 된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수 있는 건 없는, 손발이 꽁꽁 묶인 듯한 갑갑함에 둘러싸여 지냈던 느낌들이 환기된다.

뭐든 해봐야, 실패라도 해봐야, 다음 일에 대한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20대에게 주어지는 기회란 별로 없다는 사실도 체감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창창한 젊은이들에게 왜 기회란 쉽게 주어지지 않는가. 어째서 대부분의 청년들은 공무원시험이나 임용고시같은 획일적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청춘의 귀한 시간을 고시원에서 소비해야 하는 건가. 도전정신이 없는 청년들을 탓할게 아니라 도전할만한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 환경탓을 해야할 지점이 아닌가. 내 앞에 거쳐간 많은 훌륭한 스승에게 막시즘의 수혜를 받아 유물론자가 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럽다.

젊은 창작가들에게 자유롭게 지면을 내어주고, 잡지를 만드는 대부분의 과정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력들이 만들어가는 '씨위드'를 움직이는 동력은 그거다.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기회를 주면서 기존의 환경을,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 그 기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가는 것, 원래 잘하던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 모르던 일을 시험삼아 해보는 것. 이렇게 기회들을 모아 또 다른 기회로 연결시키는 것. 월급도 주지 않는 일에 무슨 참여자들이 그리 많고, 모두들 왜 그리 열심히 일하냐고 묻는이들에게, 육아휴직이나 안정적인 월급보다 더 큰 경험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제 대학졸업반인 한 동료는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주말은 '씨위드' 일을 하기 위해 비워뒀다는 말도 한다. 임용고시 준비로 빛나는 청춘의 대부분을 지내버린 한 동료는 이제야 사회 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국가에서, 선배들이, 기관에서 만들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만든다. 단순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서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필요한 일이었다고 세상에 보여준다. 이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한 일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움직이게 하고,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게 만들고, 의미있게 만든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면, 그 공감을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갓 미술대학을 졸업한 동료가 최근 감명깊게 읽은 책을 보며 '씨위드'를 생각했다고 공유해 준 문장이 있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 충실하는 것은 위대한 회사와 멋진 인생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긴밀한 연결고리인 것 같다…. 우리가 버스에 함께 타고 있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버스가 어디로 가든 우리는 거의 틀림없이 멋진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함께라야 좋은 일이 있다. 자본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400페이지가 훨씬 넘는 한글판 영문판 책 2권과 웹진을 25명의 스텝들과 300여명이 넘는 전세계의 아티스트들, 200여명이 넘는 후원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느낀 점이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의지하면서 '우리'는 함께여야만 가능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우리힘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만들어가면서 조금씩 사회로 나오는 중이다. 돈도 없고 백도 없었지만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다. 서로에게 결코 실망하지 않으며, 신뢰하는 동료들과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나연 씨위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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