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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이 걸어온 길..
"순탄치 않은 삶… 인생 고비넘기며 단단하게 단련"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입력 : 2018. 06.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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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당선인은 지난 도지사 임기동안 도민들을 실망시켰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제주가 커나가는 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사진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시청 인근에서 지지자들과 포옹을 나누고 있는 당선인.

'가난'은 학구열의 원동력…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이념과 현실의 간극 고민하며 '사람'에서 답 찾아
다함께 잘 사는 제주와 대한민국을 목표로 재정진

원희룡 당선인(54)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탄탄대로를 걸은 시간보다 바닥에서 눈물을 흘린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가난의 혹독함을 겪었고 노동현장의 현실과 투쟁이론 사이에서 간극을 체감했다. 서울시장·당대표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같은 역경은 당선인을 벼랑끝으로 몰아가기보다 더욱 단단하게 단련시켰다.

가난은 책과 학업에 열중하게 했고 노동운동 현장에서 부딪쳤던 한계는 현실 세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찾게 했다. 난관을 극복하며 성장해 온 그는 선거운동기간 도민들의 쓴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새롭게 거듭났다.

이제 당선인은 지난 임기동안 도민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켰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도민 속에서 도민과 함께 제주가 커나가는 꿈을 만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란 학창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감=원희룡 당선인은 1964년 서귀포시 중문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쌀밥보다 고구마를 썰어 말린 '빼대기'로 끼니를 떼우는 날이 많았고 운동화는 커녕 구멍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뒤틀린 두 개의 발가락도 풍족하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생채기다. 장날 새벽 장사를 나서는 부모에게 리어카에 타겠다고 응석을 부리다 그만 바퀴에 오른쪽 발이 끼어들어갔다. 둘째 발가락이 절단됐지만 제대로운 치료를 받지 못했다. 시골의 변변치 못한 사설 의료시설에서 급한대로 봉합수술을 했지만 발가락 두개가 하늘을 향해 뒤틀리게 됐다. 수술경험이 별로 없던 의원이 발가락을 관절 위로 붙여 버리고 만 것이다. 부모는 그의 발가락을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돈을 벌어 다시 수술을 해주겠다 약속했지만 가정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빚 때문에 흉기로 위협을 받는 부모님의 모습까지 봐야 했다.

이같은 현실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감을 낳았고 그를 책 속으로 이끌었다. '더 넓은 세계로 가는 길은 오직 공부 뿐'이라는 생각에 소년 원희룡은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1982년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전국 수석이 나온 것은 별난 일이었다. 수석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의영광이기에 앞서 제주의 자랑"이라면서 맑스베버 같은 사회학자를 꿈꾸던 당돌한 소년 원희룡. 그 모습은 도민들에게 인상깊게 남았다.

고등학교시절 원 당선인과 어머니.

▶넓은 세상에서 시대의 현실과 마주하다=그렇게 당선인은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 몇 달간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던 당선인의 눈에 이상한 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학교 안에 사복경찰들이 상주했고, 시위를 하거나 유인물을 뿌리는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끌고 갔다. 민주주의가 책에만 있었을 뿐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진실도 알게 됐다.

가슴에 불꽃이 일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지던 찰나 교내에서 경찰이 여대생을 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선인은 관련 집회에 참석했고 유기정학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시대의 현실을 마주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당선인은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85년 6월 그는 인천에서 프라이팬과 냄비를 생산하는 공장에 출근했다. 대학생 신분을 속이고 말단 생산직 노동자로 위장 취업을 했다. 밤마다 구로공단에서 야학활동을 했던 그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했다. '참된 지식인은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시대의 열병에 동참한 것이다.

일당 2900원짜리 노동자의 생활. 공장에서 3일 내내 철야를 하다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힘들었던 것은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이었다. 그는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의식개혁을 한다는 일의 공허함을 알게 됐다. 한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관리자와의 다툼 끝에 공장에서 나왔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국 수석으로 들어간 서울대 입학식 장면.

▶새로운 인생의 좌표를 찾다=게다가 1989년 사회주의 동구권의 몰락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인생을 걸고 노동현장에 투신하게 한 이론과 철학의 한계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념을 상실한 청년 원희룡에게 견디기 힘든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석달 간의 무전여행을 떠났다. 반쯤 거지꼴을 하고 노숙을 거듭하며 석달 동안 나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도착한 소록에서 이념보다 인간의 삶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좀 더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그는 방황을 접고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통의 시간을 어금니로 깨물고 엉덩이로 버텼다. 사법시험 준비 2년만인 1992년 '제주도 출신의 원희룡씨가 제34회 사법시험에서 수석 합격했다'는 기사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원 당선인의 학창시절 가족과 함께 촬영한 사진.

사법연수원 졸업 후 그는 검사의 길을 택했다. 검사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범죄자들을 다루다보니 사람의 말을 일단 의심해야 했다. 거칠게 살아온 이들을 다루기 위해선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도 필요했다. 이런 일이 그의 체질이나 성격에 맞지 않았다.

▶낡은 보수, 제주 정치를 개혁하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거세게 불었던 '젊은 피'수혈 바람을 타고 정계에 입문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그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곧 소장파 모임 결성, 당 지도부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가 보수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2003년 남경필·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결성한 미래연대는 이른바 '남·원·정'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소장파의 대표적 모델로 회자되고 있다.

탄탄대로일 것 같은 정치 인생이지만 굴곡이 많았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 의원에게 경선 패배의 쓴잔을 마셨고, 2011년에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 대표 도전 실패 이후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11년간 소장파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외쳤지만 무엇을 얼마나 바꿨는가"라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선택은 국회의원 불출마였다

3선 의원 원희룡은 2012년 불출마했다. 정치권에서 잊혀지는 듯한 그를 2014년 새누리당에서 6·4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로 호출했다. 결과는 60%의 득표율을 얻는 압승이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좁쌀 서말을 들고 제주를 떠났던 당돌한 소년이 도지사가 돼 돌아온 것이다.

그는 20여년동안 이어졌던 '제주판 3김 시대'를 종식시켰다. 오랜 세월 제주의 정치를 쥐락펴락해 온 낡은 세력은 필연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변화의 시작은 공직 부문이었다. 그는 "공무원을 줄 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4000억원이 넘는 외부 차입금을 모두 갚은 것은 큰 성과였다"고 되돌아봤다.

또 그는 1989년부터 30년 가까이 여러 도지사들이 공약만 하고 풀지 못했던 제주의 숙원사업인 제2공항 유치도 공으로 꼽았다. 그는 연 2만대씩 증가하는 자동차와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30년 동안 큰 변화가 없던 대중교통체계에도 손을 댔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실행에 옮겼다.

▶원희룡이 꿈꾸는 정치=당선인은 다함께 잘 사는 제주도와 대한민국을 꿈꾼다. 원 당선인은 "1등 뒤에 가려진 채 철저하게 몸부림쳤던 시간들은 제가 가진 재능과 자원이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줬다"면서 "고향 제주와 대한민국으로부터 받은 큰 은혜를 모두 사회에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선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선인은 "발가락 두개가 위를 향해 뒤틀렸지만 마라톤에 도전했던 것처럼,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도전정신은 저의 인생을 관통하는 화두"라며 "다시 한 번 제가 꿈꾸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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