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석의 하루를 시작하며] '인간의 한계' 극복과 공동체 발전 방안

[정한석의 하루를 시작하며] '인간의 한계' 극복과 공동체 발전 방안
  • 입력 : 2018. 06.06(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얼마 전 본지의 칼럼 '정의(正義)와 공동체 전체적 행복(4월 11일자)'에서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게 하여 공동체 전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완벽한 절대적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러한 완벽한 절대적 방법이 있을 수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법인가? 이러한 의문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라고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깨닫게 된다는 인간의 한계는 감각적 지각을 통한 추상적 근거에 의한 깨달음이므로 문헌학적 고증이나 이론적 배경 등을 통한 보다 구체적 근거에 의한 설득력 있는 인식으로서의 깨달음이 요청된다. 따라서 이렇게 인식된 인간의 한계 조건을 극복한 공동체 발전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일은 매우 가치롭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본 제하에서는 다음과 같이 문헌상의 관련 이론을 근거로 가정·국가 등 공동체 발전 방안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즉, 플라톤의 '국가 제5권'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완전히 올바른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탐구하여 온 것은 본보기가 되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으며, 결코 그러한 본보기가 되는 것들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네."라는 대목이라든가, 또 플라톤의 '분리의 의미'에서 "인간은 이데아계와 감각계에 동시적으로 관여하는 중간자이며 신과 철저한 무지자(無知者)의 사이에 있는 중간자다."라는 대목, 그리고 또, 프랑스의 사상가이며 수학자·과학자인 파스칼의 단상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다. 무한과 허무? 위대함과 비참함 사이를 떠도는 중간자다."라는 대목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의 대목에서 인간은 '능력의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인간의 삶에서 나옴을 생각해 볼 때 대관절 인생이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이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전지 전능한 신은 잘 알지만 동물은 알기는커녕 의식조차 못한다. 이에 비하여 인간은 어떤가. 그것을 의식도 하고 답을 추구해 보지만 찾지 못하는 중간자다. 이러한 존재로서 완벽한 절대적 방안을 밝힌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며, 실현성에 의문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한계라는 깨달음에서 자포 자기하여 절망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인간은 고유한 특성인 '무한한 가능성'에 의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단히 새롭게 발전해 가며. 또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깨닫기 전에는 공동체 발전을 위한 '완벽한 절대적 방법 탐구'를 실행 목표로 하였으나 이를 깨달은 후에는 이를 '완벽한 최선의 방법 탐구'로 변경 설정하는 것이 타당함을 발견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 완벽한 최선의 방법은 모두(대표)가 한 자리에서 문제를 같이(논의하고·인식하고·숙지하고·공유하고·실행해서) 공동체 출범(창업) 상황에 따른 공동체 발전 '최선의 방안'을 찾아 설정하고 이를 시초로 순차적으로 계속해서 수정 보완해 감으로써 보다 나은(훌륭한) 최선의 방안으로 부단히 새롭게 발전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러한 방안이 곧 '완벽한 최선의 방법'이라 본다.

이상의 검토에서 완벽한 절대적 방법 탐구를 '이상(理想) 목표(궁극 목표)'로, 또 완벽한 최선의 방법 탐구는 '실행(實行) 목표'로 설정하여 두 목표를 병행하는 방안에서 '공동체 전체적 발전을 위한 절대적 방법에 이르는 완벽한 최선의 방법'이 나오게 됨을 깨닫는다. 인간은 이러한 완벽한 절대적 방법 탐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희열과 행복감에 마음 설레는 존재다. <정한석 前 초등학교교장·수필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98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