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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의 백록담] 재판거래로 무너진 '법 앞에 평등'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입력 : 2018. 06.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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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만 전념하라고, 비린내 나는 생선은 우리가 팔고, 공장 컨베이어벨트는 우리가 지켰다. 너희들의 위에 법이 있고 법 위에 우리가 있다." 지난 1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대법관 13명의 집단 반박성명에 김주대 시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내용을 담은 장문의 시를 올렸다. 시(詩)라기 보다 '경고문'에 가까웠다. 그리고 몇개월이 흘렀고 '재판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법조계'를 처음으로 담당하고 있다. 40여년동안 '평범한(?) 삶'을 살았기에 법원 근처에 갈 일이 그닥 없었다. 그 때문일까. 재판정에 들어서거나 판사를 만날 때면 이유없이 가슴이 뛰고 긴장감이 감돈다. 판사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는 존재이기에 뭔지 모를 경외감까지 든다. 그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라기 보다는 '법에 따라 평등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그런데 낯설게도 '재판 거래'라는 말이 나왔다. 뒤늦게 법률용어를 '벼락치기'하고 있지만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1심, 2심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놓고 '거래'를 했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거래'를 하라고 만들어진 '삼권분립의 법치국가'가 아니다. 배신감과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논란의 중심에 선 전직 대법원장은 조사는 거부하는 대신, 회견을 통해 모조리 반박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은 그를 가리키고 있다.

그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문득 10년전이었던 2008년 제주법원 앞에 선 이들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주인공은 23년만에 간첩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 무죄를 선고받은 강희철씨였다. 그는 1986년 85일동안 영장도 없이 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간첩으로 몰렸고,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간첩 조작으로 불법 감금과 고문에 이어 1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그에게 23년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출신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 가운데 첫 번째 진상규명이었다. '간첩조작사건'에서 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이가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

"정치적 세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입니다." 바로 그에게 해주고 싶은 이 말은 바로 그가 대법원장 퇴임사에서 밝힌 이야기다. 한쪽에 다소 억울함이 있어도 '판결'의 정당성을 믿어왔던 평범한 국민의 배신감이 이럴진데, 피해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사법부를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그들은 동료의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거래의 대상이 됐던 판결의 피해자들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 나라가 법치주의 국가가 맞느냐"라고 묻는 그들의 소리가 가슴을 친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이다. 사법부 독립 또한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사법부는 더 이상 자신들이 그런 말을 할 상황도, 처지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맞게 판결에 전념해야 한다. 판사들은 '재판 거래'에 대해 어떤 실마리를 내놓을까. 이번주에는 제주지법에서도 판사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덧붙이자면, 10년전 개인적으로 또하나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신문활용교육(NIE)을 알리기 위해 직접 나서서 교육하면서 열을 올리던 기자에게 한 교사가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바른 기사'에 전념하세요. 신문을 공정하고 바르게 만들면 그 훌륭한 신문을 활용해서 하는 교육은 우리가 합니다." 아프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이현숙 행정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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