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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화가 변시지 다룬 소설 '난무'
괴물과 맞선 폭풍과도 같았던 생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5.17.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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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기당미술관에 소장된 '폭풍의 화가' 변시지의 '풍파'.

아픈 다리·이상이 생긴 눈
황토빛 화면 속 굴곡진 삶

세찬 파도 넘어 이어도로

늦여름 제주에 세찬 비바람이 몰아닥친 어느 날, 택시를 잡아탄 60대의 사내는 '폭풍'을 외친다. 흰 머리의 사내는 어디라도 좋으니 '바람이 팡팡' 제일 세게 부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군산오름에 당도한 사내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지팡이로 땅을 쿡 쿡 찍으며 정상으로 향한다. 오름 꼭대기에 올라 바라본 바다는 미친 듯 넘실거렸다. 푸르른 바다는 이미 검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내는 스케치북을 꺼내 폭풍을 그리기 시작한다.

소설은 폭풍이 이는 풍경으로 시작된다. 사내의 이름은 시지. 짐작하시겠는가. 소설 '난무'는 '폭풍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제주 예술가 변시지(1926~2013)의 삶을 다뤘다.

서귀포시 기당미술관 명예관장이었던 그의 그림엔 제주섬의 오래된 존재들이 다 들어있다. 바람, 바다, 돌담, 파도, 초가, 조랑말…. 황토빛 화면으로 덮인 작품은 이 땅의 눈물겨운 역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기댈 곳 없이 바다 밖에서 불어대는 '폭풍'과 맞서 살아야 했던 제주섬 사람들이 아니던가.

유족 인터뷰 등을 토대로 써내려간 소설은 곳곳에서 제주방언을 사용하고 그의 대표작 속 이미지가 떠오르는 장면을 불러내며 식민지 조선의 국민으로, 신체가 온전치 못했던 인간으로 울음을 삼켰던 예술가 변시지의 굴곡진 생을 좇는다. 조선인으로 나이 스물셋에 일본 광풍회 최연소 수상자로 뽑히고 '제주화'라는 화풍을 일구며 성공한 예술가로 눈을 감은 듯 보이는 그이지만 벼랑 끝에 선 나날이 많았다.

소설은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 다리를 다친 시지가 절망감에 빠진 일을 계기로 '괴물'을 등장시킨다. '천한 환쟁이 귀신'이 평생 따라다닌다는 박수무당의 예언처럼 이 괴물은 때때로 시지를 괴롭힌다. 시지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또 다른 저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쪽 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눈은 오로지 노란색만 보였다. 노란색은 그에게 절망의 색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폭풍의 바다에 뛰어든다. "놈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했지. 하지만…… 내 모든 걸 걸고 그놈과 싸웠다."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은 채 생의 끝에 다다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이어도였다. 지팡이를 짚고 작은 배 위로 올라탄 시지는 이어도로 향해 갔다. 김미숙 각본, 김호경 소설. 푸른사상.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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