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곡의 70년' 4·3수형인들의 恨 풀어야

[사설] '통곡의 70년' 4·3수형인들의 恨 풀어야
  • 입력 : 2018. 04.02(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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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이다. '제주4·3'으로 통하는 그 참혹하고 끔찍했던 사건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도민이 무고하게 죽어갔는데도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4·3이 양지로 나왔으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4·3은 그야말로 질곡의 세월이었다. 강산이 변해도 일곱차례나 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그 긴긴 세월속에서도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은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상흔이 얼마나 깊고 처절했으면 그렇겠는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또 잊혀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때 돌아가신 분들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스러져갔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온갖 고초를 당했다. 유족들은 마치 무슨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것이다.

특히 생존한 4·3수형인들의 억울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70년의 세월을 온전히 간직한 채 '통곡의 나날'을 보냈으니 오죽하겠는가. 수형인들은 죄명도 모른 채 옥살이를 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크나큰 고통을 겪었다. 옥고를 치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사회로 돌아오니까 '4·3수형인'이니 '빨갱이'니 하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특히 '빨갱이'라는 오명 때문에 피해 사실조차 숨겨야 했다. 문제는 본인만이 아니었다. 자식들은 연좌제로 군대를 갈 수 없었고, 취직도 뜻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족 모두가 기구한 삶의 연속이었다.

뒤늦게나마 4·3수형인들이 70년간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한맺힌 삶을 토해낼 수 있었다. 지난달 중순 제주지방법원에서다. 백발노인이 된 수형인들이 "평생의 한을 풀겠다"며 지난해 4월 재심청구를 하면서 재판이 열린 것이다. 당시 군법회의는 불법재판으로 진행됐다. 재판을 입증할 증인진술서나 공판조서, 판결문 등은 아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소장된 '수형인 명부'가 전부라니 말이 되는가.

이제 4·3수형인에 대한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동안 수형인들은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과정에서도 '죄인'처럼 철저히 소외돼 왔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 당시 재판이 재판답게 이뤄졌을리 만무하다. 그 때는 동물사냥하듯 인간사냥이 자행됐던 시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수형생존자들도 당시 재판을 받은 기억이 없고, 형무소에 도착해서야 자신의 형량을 알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어느덧 90 안팎에 접어든 생존 수형인은 현재 30여명에 밖에 남아있지 않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공식 요청한 4·3수형인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꼭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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