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계 이사람] (2)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제주문화계 이사람] (2)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조선시대 흥미진진한 제주인 삶 엮고 싶어"
  • 입력 : 2018. 03.19(월)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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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규상'이란 이름으로 제주향토사료 번역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은 그간의 번역 작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제주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책으로 엮고 싶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성리학에 대한 관심이 번역으로
소농 오문복 선생 가르침 받아

'규암선생문집' 등 10권 옮겨
이원조 '탐라록' 역주 진행중
“수백년전 글 현대와 소통 경건”

죽은 자를 애도하는 만사(輓詞)의 한 대목을 읽을 때 였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살피며 뜻을 헤아리다 어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상을 등지고 먼 나라로 떠나는 고인을 생각하며 적어내려간 글귀에 감정이입이 되며 울컥해지더라고 했다.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올해 나이 50인 그는 최근 몇 년새 제주에서 가장 활발하게 고문헌 번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번역서가 10권에 이른다. 그가 번역을 시작한 계기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한국철학 과목을 통해 성리학에 관심을 갖고 원전을 찾아 보던 그는 1997년 소농 오문복 선생의 한문 강좌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공부에 나선다.

"강의를 듣기 위해 고향인 구좌읍에서 제주시까지 1주일에 한번씩 빠지지 않고 오는 제 모습이 기특했던지 선생님은 강의가 끝난 후에도 별도로 가르침을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1년 정도 지나니 저에게 한시를 보여주며 번역 순서를 적어보라고 하더군요. 차츰 그 분량이 늘었는데 그게 훗날 한 권의 책으로 묶였습니다."

소농 선생이 자비를 들여 내준 '삼오시집'에 처음 역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때부터 그가 번역한 책엔 스승이 지어준 자(字)인 '규상(圭尙)'을 쓴다. 오씨 성을 가진 제주 유학자 3명의 시를 담은 이 책을 시작으로 그는 북제주문화원 사무국장,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향토사료를 발굴하고 번역하는 일을 늘려갔다. 제주교육박물관의 '규암선생문집'처럼 외부 번역 작업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소농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며 선생에게 들었던 제주의 역사·인물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다. 단순 강독을 넘어 거기에 담긴 사회적 배경까지 읽어야 온전한 풀이가 되기 때문이다. 제주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해 '조선후기 제주지역 마애석각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으며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점도 역주, 해제본 작업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에더해 그는 초서 천자문을 수도없이 읽고 썼다. 지금도 하루에 얼마간은 초서 문장을 쓰는 훈련을 한다.

이즈음 그는 헌종때 제주목사 이원조가 남긴 일기인 '탐라록(耽羅錄)' 역주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제주문화원에서 상·중 두 권이 나왔고 연말쯤 하권이 나올 예정이다. 번역비 한푼 없지만 그는 이 책을 역주하도록 동의해준 제주문화원 이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1시간에 20글자를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그만큼 더 큰 배움을 얻는다는 이유에서다.

"수백년 전 글이 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구나 생각하면 절로 경건해집니다. 번역서가 기초자료로 활용된다는 점도 보람입니다. 번역을 하다보면 그 시대 인간 군상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는데 그걸 엮어서 언젠가 '조선시대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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