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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재심…억울한 청춘·세월에 한 맺혀"
제주4·3수형인 재심청구 2차 재판 어제 열려
부원휴·김평국·현창용·오희춘 등 증인 나서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입력 : 2018. 03.19. 18: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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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는 이날 재심을 청구한 부원휴(89)·김평국(88)·현창용(86)·오희춘(85)씨와 함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진=강경민기자

"30년 전이라도 지금처럼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통스러운 청춘과 억울한 세월에 한이 맺힌다. 수형인들의 통곡의 삶을 국가가 재심을 통해 살펴주기를 바란다."

 19일 제주지법 형사2부(제갈창 부장판사)는 1948년과 1949년 제주에서 이뤄진 군사재판 수형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에 대한 두 번째 심문을 진행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 2월5일 열렸던 첫 재판에 이은 2차 재판이다.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는 이날 재심을 청구한 부원휴(89)·김평국(88)·현창용(86)·오희춘(85)씨와 함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이날 증인으로 서기 위해 법정에 나선 이들은 모두 4명이었지만 이들 이외에도 함께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도 함께 참석했다. 70년전 이들은 모두 16~18세의 '꽃다운 청춘'이었다.

 이날 심문에서는 내란죄로 군사재판을 받고 형무소에 수감되는 과정에서 겪은 피해를 증언하고, 군사재판의 부당함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수형 피해자 개개인에게 30분 이상씩 증언 시간을 배정했다.

 김평국 할머니는 재판에 앞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된다. 70년전 경찰서에 잡혀갔고 며칠 있다가 포승줄에 묶여 짐짝처럼 배에 옮겨졌다. 이후 열차를 탔는데 나눠주는 주먹밥 하나를 먹고 하늘을 봤을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죄수복으로 갈아입은 후 담요한장으로 수형생활이 시작됐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오희춘 할머니는 "뒤늦은 재판을 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한스럽다. 30년 전이라도 지금처럼 이야기 할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2300여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형사재판으로 받았던 이후 아픈 세월을 보내야 했던 어르신들이 이 자리에 선 것은 참으로 의미있지만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군사재판이 무효가 되어 한번에 해결이 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개개인이 어렵게 재심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회가 무책임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정에는 김종민 4·3전문가도 증인으로 나왔다. 김씨는 국가기록원 자료를 바탕으로 1948년과 1949년 제주도에서 이뤄진 군법회의가 정상적인 재판이 아닌 불법적으로 이뤄졌고, 억울하게 수형당했다는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한편 4·3도민연대는 4·3수형생존인 18명과 함께 지난해 4월 19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주지방법원에 '4·3재심청구서'를 제출했으며, 지난달 5일 첫 심문이 열렸다.

 이번 '4·3수형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 청구'에는 4·3 당시 전주형무소 생존자 9명, 인천형무소 생존자 6명, 대구형무소 생존자 2명, 마포형무소 생존자 1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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