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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백록담] 또 다른 김승철, 강혜명을 기다리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3.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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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받은 목소리들이었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오는 5월 오페라의 본토인 이탈리아의 3대 오페라극장 나폴리 산카를로 극장에서 열리는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로 낙점됐다. 바리톤 김승철 역시 서울 예술의전당 '라 트라비아타' 등 수차례 제르몽을 연기해왔다.

제주 공연은 그들에게 남달라 보였다.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일이 드문 두 사람이 '오페라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고향 제주에서 한국오페라70주년을 기념하는 '라 트라비아타-동백꽃 여인'의 주역으로 '금의환향'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저녁 제주아트센터. 이날 전국 순회의 첫발을 떼는 '라 트라비아타'가 올려졌다. 제주에서만 전막 공연을 하고 나머지는 갈라콘서트로 진행되는 영향인지 무대 장치는 단출했지만 두 사람의 열연은 그 여백을 모자람없이 채웠다. 강혜명은 사랑을 잃고 커다란 슬픔에 빠진 채 결국 죽음에 이르는 여인을 노래했다. 김승철은 남녀 주인공을 갈라놓으며 비올레타를 절망으로 이끄는 악역을 맡았지만 호소력있는 음성으로 그 사연을 설득력있게 그려냈다. 특히 극의 전환을 맞는 2막 1장에서 두 사람이 빚어내는 앙상블에 객석에선 잇따라 '브라보'를 외쳤다.

김승철은 제주대를 졸업한 뒤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다. 30대 후반에 유럽 무대에 데뷔해 이탈리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다 지금은 국내 대학 교수로 있다. 강혜명은 그에 비해 비교적 일찍 유학길에 올랐고 지금은 유럽에서 주목받는 성악가 중 한 명으로 국내외 무대를 오가고 있다.

두 사람의 무대를 보며 제주 공연계의 오늘이 뒤따라 그려졌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갖은 노력 끝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겠지만 제주에서 제2의 김승철, 강혜명을 탄생시킬 수는 없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내놓은 '2017문예연감'에서 2016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문화예술 활동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이 제주(133.3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전국 평균의 두배에 가깝다. 제주는 전시·공연을 합친 문화예술 전체 활동 건수가 전년보다 24% 늘었다. 특히 국악, 양악, 연극, 무용, 혼합 등 모든 장르의 공연예술 활동 건수에서 수도 서울을 제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수치가 정작 지역의 공연예술인들에겐 별 감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양적으로 공연 횟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거나 단체에 몸담으며 제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 중엔 소외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자체가 제주 소재 작품을 만든다며 유명 제작진을 끌어오기 위해 들이는 품만큼 제주에 터잡은 예술인들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은 소홀하다는 불만과 통한다.

단기간 성과에 쏠리다보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긴 안목으로 지역 공연, 지역 예술인을 키워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제주교향악단·합창단 등 전국 공모가 이루어지는 제주도립예술단만 해도 오디션 과정에서 제주에서 배출한 인력이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도내 대학에 관련 학과가 없는 제주도립무용단은 말할 것도 없다. 문화도시 제주, 제주 문화의 정체성 운운한다면 지자체, 대학 등이 손을 잡고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따라야 한다. 제주 문화상품을 내세워놓고 제작 과정에 제주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주지 않는다면 말이 되는가. 지역의 어느 예술인들은 근래 '시행착오'란 말도 잊었다고 했다. 시작도 못해보니 공연을 반복하며 더 나은 무대를 가꿔갈 기회도 없다면서.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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