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악은 과연 탐라악인가" 뜨거운 논쟁

"도라악은 과연 탐라악인가" 뜨거운 논쟁
제주학연구센터 '탐라사 국제학술대회'서 문제 제기
어원 등 고찰 오창명 교수 "추정일 뿐 아직 단정 일러"
전경수 교수 "도라=탐라 日 인류학자 언급 무시못해"
  • 입력 : 2018. 03.09(금) 18:44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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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열린 제주학연구센터 주관 탐라사 국제학술대회는 도라악을 둘러싼 문제제기 등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강경민기자

도라악(度羅樂)은 과연 제주와 연관있는 탐라악인가. 제주도와 제주학연구센터가 9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개최한 2018탐라사 국제학술대회는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시종 뜨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고대 탐라문화의 수수께끼-탐라복(耽羅鰒), 도라악'을 주제로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에는 한·일 두 나라 학자들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해 탐라-일본 교류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추정해온 탐라복과 도라악이 과연 탐라문화를 규명할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살폈다.

탐라복은 1963년 일본 헤이조궁터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목간에 적힌 글자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탐라에서 채취되는 전복의 품종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도라악은 나라시대 일본의 국사인 '속일본기'의 731년 기록에 처음 언급되는 내용으로 탐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나라시대에 세워진 동대사(東大寺)의 '보물창고'라는 정창원(正倉院)에는 현재 도라악 관련품 8건이 보관되어 있다.

도라악이 제주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계기는 1993년 현행복의 논문 '일본 도라악에 대한 관견'이었다. 이날 '탐라의 무속 군무, 도라악'을 주제로 발표한 현행복 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장은 캐나다 데이비드 워터하우스의 논문 '도라악은 어디에서 왔는가'(1996) 등을 언급하며 "일부 일본 학자들의 주장인 도라악이 동남아 지역 타라 유래설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도라악의 기원이 탐라악이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도라와 탐라의 관계와 어원'을 주제로 발표한 오창명 제주국제대 교수는 도라와 탐라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 등으로 도라가 제주를 일컫는다고 보거나 도라악을 탐라악이라고 하는 건 추정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근 300여년 동안 일본 학자들이 도라악과 도라에 대해 연구해왔지만 지금까지도 결론을 못내리고 있다"며 "그래서 공간된 일본 사전에서조차 단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가 제시한 일본 사전엔 '도라국은 인도네시아 발리 섬 지방이라는 설 외에도 조선의 제주도 옛 이름인 탐라라는 설, 서역 지방에 있던 도카라라는 설 등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고 적히는 등 도라를 딱히 제주도, 곧 탐라로 칭하지 않았다.

나이토 사카에 나라국립박물관 학예부장은 "나라 '정창원' 보물에 보이는 '도라악' 관련품' 발표에서 "나무로 만든 모조 대도 같은 관련품을 볼 때 도라악이 동아시아 음악이라고 추측할 수 있고 이 점이 도라악이 탐라음악이라는 설에 유리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결정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도라악의 실상은 알 수 없는 것이 많아서 수수께끼의 고대 음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와관련 토론을 맡은 이유진 숭실대 초빙교수는 "도라를 탐라라고 말하기엔 시기상조다. 일본 사료에 나온 도라가 국가명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은영 전남대 교수는 "도라악을 동아시아나 탐라와 연관지을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성에 좀 더 주목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날 탐라복과 도라악을 중심에 두고 '탐라문화의 생태주의와 국제주의: 반성적 재창조를 위하여'를 주제로 기조강연한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종합토론 좌장을 맡아 토론을 정리하는 발언에서 도라악을 둘러싼 논쟁을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

전 교수는 "도라를 탐라로 직접 연결시키는 건 곤란하다는 말씀들을 하셨는데 제주를 방문했던 '인류학자의 조상'이라는 일본의 도리이 유조가 1914년 쓴 글에서 '도라는 탐라'라고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며 "오늘 도라악이 탐라악인가에 대해 해결이 하나도 안된 듯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자료, 문헌들이 나온 건 진전되었다는 증거다. 좋은 숙제를 받았고 앞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만큼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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