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철의 목요담론] 도시의 품격과 글씨의 예술성

[양상철의 목요담론] 도시의 품격과 글씨의 예술성
  • 입력 : 2018. 02.22(목)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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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되지 못한 상업 간판들이 도시미관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좋은 건축물일수록 간판이 건물 장식의 일부로 부속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현대 건물은 유리와 쇠로 무장되어 차갑게 고형화된 콘크리트 덩어리다. 도로를 따라 나열된 건물들은 경직되고 온기가 없다. 그러나 손 글씨 간판은 인간의 정감을 담아 차갑고 딱딱한 도시건물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필자의 관심은 글씨에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간판에 사용된 문자를 통해 도시의 표정을 읽게 된다.

한·중·일 삼국을 비교하더라도, 중국의 간판 글씨는 자국문화의 자존을 서예에서 찾고 있어 곳곳에서 수준 높은 붓글씨를 만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초중고교 과정에 서예과목이 배정되어 일상으로 서예가 친숙해서인지, 산업광고나 간판글씨로 모필 서체가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한국은 정책적으로 서예 교육에 대한 관심이 별무하니, 도시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띄는 것은 컴퓨터활자 간판 일색이다. 띄엄띄엄 손 글씨가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을 알 수 없는 막 글씨여서, 도시 품격을 갖춰줄 수준 높은 서예심미가 아쉽다.

실용을 목적으로 탄생한 서예가 근자에는 마침내 실용성을 상실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이하 캘리)가 태동하여 실용의 한 지로를 탐색하고 있다.

캘리는 1990년대 후반, EQ(감성지수)와 감성마케팅이 유행하면서 등장되었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 아날로그적 감성을 손 글씨를 통해 표현하고자 함에 있다. 대체로 캘리는 한글에 적용된다. 그동안 한글서예는 전통의 틀에 벗어남이 없이 판본체, 궁서체 위주로 정형화시켜 현대인의 미적 요구에 따르지 못해왔다. 서체의 다양성과 글꼴의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학습방법 때문에, 시대의 적응력을 잃고 대중에게 소외된 것이다. 사실 한글만이 아니라 서예 전체가 시대를 모르고 과거지향의 고급문화 한 귀퉁이를 붙잡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요즘 캘리는 침체된 서예계의 새로운 운동처럼 흥행하고, 상업성을 좇아 디자인 전선에 투입되고 있다. 영화 포스터뿐만 아니라 제품 패키지, 길거리 간판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이런 흐름은 '감성 글씨'라는 슬로건으로 민간서풍을 형성시켜 유행되고 있다. 캘리가 실용성을 찾아가는 새로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실용성 상실의 문제에 봉착한 오늘의 서예에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뿌리 없는 가지는 고사하고 만다. 캘리는 이제 시작단계에 있어 텍스트나 아직 준비된 미적 규준이 없다. 서예미학은 3000년 역사의 기초위에서 고차원의 정신과 서법에 기준한 심미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캘리가 서예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유구한 서법의 진리를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글씨는 반드시 신(神), 기(氣), 골(骨), 육(肉), 혈(血)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모필의 특성이 체득되지 않은 즉흥적이고 유희적 도구의 사용만으로 서예술의 깊이를 탐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든 예술은 전통에 기반하고 전통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탄생시킨다. 캘리가 이러한 서예심미의 역사적 경로에서 이탈되지 않으려면, 실용성과 상업성, 대중성을 뛰어넘어 예술성을 통해 생명력을 길러야 한다.

캘리의 발전과 미래를 진단하면서, 수준 높은 글씨가 도시품격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행정당국과 시민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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