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춘옥의 하루를 시작하며] 70주년, 4·3기록물 보존관리는 '필수'과제

[고춘옥의 하루를 시작하며] 70주년, 4·3기록물 보존관리는 '필수'과제
  • 입력 : 2018. 02.14(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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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요즘 새 정국에 '제주4·3 70주년'을 맞이하려는 움직임이 평창의 열기 못지않게 뜨겁다. 특히 이번 70주년 행사는 4·3 체험세대의 마지막 기념일이라 제대로 일 내보려는 모양이다. 6·13 지방선거라는 호기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때문에 도민의 정서를 이용하려는 원 지사의 선거전략이 아니냐는 소리도 은근히 나돈다. 규모가 크다보니 따라서 허술한 부분도 눈에 확 띈다. 주요사업에서 '필수'과제인 4·3 기록물에 대한 수리보존관리사업이 누락됐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주요사업 과제로 제주4·3특별법 개정안 국회 처리,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4·3의 전국화를 위한 교육 및 홍보활동을 수립했다. 하지만 무형의 역사문화에 필수근거가 되는 유형의 기록물보존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래서는 제주 4·3이 한 시대 이슈로 부풀었다가 한 순간 꺼져버리는 '지나간 하나의 사건'이거나 '조작'인 채로 끝날 수 있다. 그러므로 4·3유적지에 기록물 전시관을 제대로 갖추고 이것을 유네스코에 등재해서 오롯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유네스코는 역사기록물에 대한 현장보전의 원칙을 고수한다고 한다. 현장에서 떠난 기록물은 가치를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도 제주4·3 기록물은 현장에서 많이 떠나있다. 그 이유를 증거물을 은폐하고자 했던 가해권력의 한 수, 전문지식이 없는 관계자, 역사적 가치 인식이 희박한 관리자 등의 탓으로만 몰아 '구호'로 땜질한다고 유네스코가 인정할 리는 만무하다.

일본의 경우는 현장중심의 실질적인 역사교육으로 정평 나 있다. 나가사키 원폭박물관은 해골과 뼈만 남은 사람이 흔들거리며 갑자기 튀어나오는 듯한 전시효과와 원자폭탄을 천장 위에 덜렁덜렁 매달아 놓고 '빗방울이 떨어지네 내 머리 위에'라는 팝송을 깔아놓고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난 다음엔 흑우(黑雨)'를 느끼게 하고, 객들이 원자폭탄 위에 직접 올라타서 만져보고 내부를 해부 분석한 것까지 단 한 번의 관람으로도 역사를 이해하고 깨우치게 한다. 히로시마평화기념관은 사람이 새까맣게 타 숯이 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유리병이 녹아버린 그 열기를 절실하게 전달함으로써 역사가 주는 교훈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오키나와 히메유리기념관인 경우 히메유리여자고등학교를 그대로 살려놓았다. 교실에서 사라진 학생들은 사진 속에 앉아있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교과서를 펼치면 오키나와 전투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한쪽 벽면에는 전투 중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교실창문 밖의 전투를 지켜보는 것처럼 당시 역사를 생생하게 공부한다. 알맹이 빠진 유적지에서 해설자의 목 아픈 호소를 들으며 오로지 상상력으로 역사를 관람해야 하는 제주와는 그 '급'이 다르다. 해서 그들의 다크투어리즘은 경제효과도 매우 크다.

역사기록물보존관리의 의미는 오래도록 놓아두자는 게 아니라 '분류'하고 '보존'해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썩지 않게 약품처리하고 진공 처리해서 수장고에 넣어 놓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전시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관람객이 유물의 형태가 뭔지, 유물의 진실한 가치가 뭔지, 역사적 가치가 뭔지, 그 질감을 알고 그 땔감을 알고, 그 냄새를 맡을 수 있겠어요? 일상생활에 노출되어도 괜찮을 정도가 되도록 전문적 과학적 처리를 거쳐야 되는 것이죠." 한 문화재수리보존관리 전문가의 말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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