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의 한라시론] 역지사지(易地思之), 관점에 대한 작은 생각

[김용성의 한라시론] 역지사지(易地思之), 관점에 대한 작은 생각
  • 입력 : 2018. 02.08(목)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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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곰

문은 문이고

곰은 곰이다

나는 문이라 쓰지만

마주보는 너는 곰이라 말한다



한쪽은 미음부터, 다른 쪽은 기역부터

출발 다르고 과정 다르고 끝도 다르다

기억부터 다르고 마음까지 다르다

미음도 미움도 모두 내려놓고 보라



문이라 쓸지라도

틀리다 소리 지르기 전에

눈길을 들어 살며시 맞은편에 놓으라

같은 곳을 같이 바라본다면

딱딱한 문을 열고 바라본다면

문은 문이어도

곰곰이 보면 곰이다

가만있는 문이 숨을 쉬는 곰이다

김용성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다. 내 논에만 물대기, 즉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사고를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시대인 지금도 '아전인수'는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쓰이는 표현 중 하나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 사람도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쉽게 놓쳐버리기 쉬운 게 바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태도가 아닐까 한다.

역지사지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중요한 몇 가지만 같이 생각해보자.

우선, 자기 '눈'(관점, 시각)을 잠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글자를 보고 누군가는 자기 지식이나 경험으로 '문'이라 말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누군가는 다르게 '곰'이라 말한다. '문'이라 읽은 사람은 'ㅁ'으로 출발하여, 'ㅜ'라는 과정을 걸쳐, 'ㄴ'으로 주장을 마무리한다. 똑같은 글자지만, 다른 시각이나 각도로 '곰'이라 읽은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ㅁ'이 아닌 'ㄱ'으로 분명히 시작한다며 서로 상대방에게 틀렸다 말한다. 상대가 바라보는 관점을 존중하는 일은 이처럼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 역지사지는 '자기 마음'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논쟁이나 말다툼에서 자기논리에 지나치게 빠져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편향된' 마음이 앞서서 합리적인 논쟁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말이 안 통한다 생각되면 상대가 괜히 미워지고 약점 잡아내 흠집 내고 싶은 그러한 마음에 휘둘리는 경우가 그 예다.

세 번째, 역지사지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대가 보는 시각에서 '같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보는 글자는 분명 '문'이어서 'ㅁ'으로 시작하는데 상대는 이것도 모르고 자꾸 'ㄱ'으로 시작한다고 우긴다. 결국 같은 글자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단지 다르게 읽힐 뿐인데도 말이다. 나와 '다르다' 해도, 상대를 '틀리다' 단정 짓기 전에 눈길을 들어 무엇보다 상대 입장에서 '같이'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우리는 같은 현상을 두고도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문'과 '곰'처럼 같은 현상이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하나는 딱딱한 '사물'이고 또 하나는 살아 숨 쉬는 '동물'이다. 관점에 따라 이처럼 큰 차이를 가져온다. 배운 만큼 겪은 만큼 더욱 정교해지는 자기논리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자기관점이라는 '딱딱한 문'에 갇혀있기보다, 때로는 그 문을 열고 나와 다르게 바라보고, 상대와 같이 바라보는 여유가 그래서 필요하지 않을까?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자기시선에 가려졌던 게 보인다. 상대가 그제야 보인다. 바로 역지사지다. <김용성 시인·번역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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