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한라칼럼] 성장하는 제주, 곪아가는 제주

[김병준의 한라칼럼] 성장하는 제주, 곪아가는 제주
  • 입력 : 2018. 01.23(화) 00:00
  • 김병준 기자 bjki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새해들어 '삶의 질' 문제가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삶의 질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새해는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년사 제목도 '내 삶이 나아지는 나라'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올해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국민 삶의 가시적 변화에 두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이 가장 절실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미 나온 통계들을 보면 더욱 실감하게 된다. 2016년 제주지역 경제성장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자그만치 6.9%로 2000년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국평균(2.8%)보다 2.4배가 넘는다. 이렇게 제주가 호황을 누리면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 하지만 제주경제가 좋아졌는데도 기쁘기는 커녕 씁쓸하게 와닿는다. 내실없이 양적으로만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관광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최근 10년의 통계를 보면 안다. 2016년 제주 관광객은 1585만여명이다. 2006년(531만여명)보다 198.4%(1054만여명)나 증가했다. 한데 제주관광이 급성장하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관광객 증가로 도민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제주 투어리스티피케이션(지역개발에 따라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에 대한 보고서'가 그것이다. 주요 관광지 인근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다. 주민 절반이 관광객 때문에 부동산 가격과 지역범죄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제주관광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처우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2015년 분석자료에 따르면 관광 종사자의 1인당 연평균 임금은 1820만원이다. 제조업(1990만원)과 건설업(1870만원)에 비해 낮았다. 그러니까 관광 종사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린 것이다. 제주관광이 호황을 누리면 뭣하는가. 정작 관광 종사자들의 대우는 내세우기 부끄러울 정도다.

그렇다고 도내 가구소득이나 근로소득이 높은 것도 아니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2016년 기준 도내 가구당 평균소득은 전국평균(5010만원)보다 적은 4616만원으로 전국 9위다. 가구소득 중 근로소득은 2311만원으로 전국평균(3276만원)의 70.5% 수준에 그쳤다. 평균치보다도 무려 1000만원 가량 적다. 근로소득이 전국에서 전남(2248만원) 다음으로 꼴찌나 다름없다.

문제는 제주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부작용이 만만찮다. 한마디로 제주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주택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제주관광은 싸구려로 전락했다. 교통환경은 악화일로다. 쓰레기는 넘쳐서 자체 처리도 못하고 있다. 하수는 과부하가 걸려서 정화되지 않은 오수가 수시로 바다로 흘러든다. 살인·강도·폭력 등 강력범죄 발생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우리의 생활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제주가 전국의 로망이지만 이게 현주소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곪아가고 있다. 심지어 청정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현재 먹는물은 거의 100%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잖은가. 지하수가 오염되면 제주는 끝장이다. 그러니 제주경제가 성장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민의 살림이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팍팍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주발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뭐라해도 도민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으면 제주는 '빛 좋은 개살구' 밖에 안된다.

<김병준 논설위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87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