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갈체의 부지런함을 아시나요

[김완병의 목요담론] 갈체의 부지런함을 아시나요
  • 입력 : 2018. 01.18(목)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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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오름 남서쪽에 위치한 도너리오름은 10년째 자연휴식제에 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원형 분화구와 말굽형 분화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한경면 곶자왈의 근원지이다. 말굽형 분화구가 갈체 모양이라서 '갈체오름'이라고도 한다. 갈체는 엎어 놓으면 오름 능선과 닮았고 바로 놓으면 한쪽이 터진 오름 분화구이다. 갈체는 제주사람들에겐 어떤 존재였을까.

농사일과 바닷일을 동시에 해야 했던 제주의 어머니들이 챙겨야 할 도구가 구덕과 갈체이다. 구덕은 대나무로 짜서 만든 바구니로 보통 테왁, 쌀, 떡, 빨랫감 등을 넣고 운반할 때 유용하며, 물허벅을 지는 물구덕도 따로 있다. 갈체는 기능적으로 육지부의 삼태기와 같다. 갈체는 틈새가 조금 있지만 촘촘하게 엮어서 만들지 않으면 얼마 못 가 망가지기 일쑤다. 다행히 댕댕이덩굴의 줄기는 탱탱하고 탄력성이 좋아서, 갈체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다.

댕댕이덩굴은 제주에서는 정동줄이라고 하는데, 정동벌립(또는 정동모자)을 만드는데 최고의 재료이기도 하다. 갈체를 사용하다가 손이 베이거나 상처가 날 우려가 대나무보다 훨씬 적은 이점도 있다. 어떤 때는 줄기가 여러 겹으로 꼬여서 자라기도 한다. 덩굴성 식물의 줄기가 사람의 갈등 문제만큼이나 꼬여 있기는 하지만, 그 꼬임새를 보고 생활도구로 활용해온 선조들의 지혜가 바로 골체에 스며있는 것이다. 질 좋은 정동줄과 윤노리낭 확보를 위해 평소에 정동줄이 있는 곳을 잘 살펴보는 것은 아버지들의 몫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 꼭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검질(잡초)이다. 집안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어머님들이 농사일을 할 때 가장 힘들고 성가시게 하는 것이 검질이다. 밭에 검질이 많다보면, 게으른 집안으로 손가락질을 당할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뽑으면 다시 올라오는 것이 검질이며, 조밭, 콩밭, 보리밭의 검질 매기는 정말 힘든 노동에 속한다.

검질을 매기 위해 가장 필요한 도구가 바로 갈갱이와 갈체이다.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잡초를 뽑기 위해서는 맨손으로도 하지만, 갈갱이(호미)가 있어야 효율적이다. 제거된 검질들은 밭 경계면에 따라 버려지지만, 군데군데 모아 놓은 검질들을 구석진 것으로 옮겨 놓으려면 운반도구인 갈체가 필수였다. 또한 갈체는 검질 뿐만 아니라 고구마, 감자, 당근, 거름, 흙, 자갈 등을 옮기는데 아주 유용하다. 특히 고구마 수확기에는 생빼대기(고구마를 썰어 놓은 거, 절간)를 나르거나 뿌릴 때 그리고 마른 빼대기를 주워 담을 때 아주 유용하다. 잠시 눈을 감고 옆구리에 갈체를 차고 잰걸음으로 밭에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이제 50대의 아들과 딸들은 절로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갈체 부지럼은 하늘도 못 막나'라는 제주 속담이 있다. 갈체(삼태기)의 부지런함은 하늘도 막지 못한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갈체는 쉴 겨를도 없이 다음날엔 또 다른 검질을 매야하니, 제주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갈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터진 부분을 헝겊이나 나일론 끈으로 꿰매면서 수리해왔지만, 결국 버려진다. 슬플 뿐이다. 일부는 박물관으로 보내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갈체에 배어있는 제주 사람들의 성실함과 근검절약은 온데간데 없어서 볼 때마다 참 애잔하다. 갈체오름을 비롯한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 그리고 돔박생이(동박새)와 같은 보물들이 갈체와 같은 신세로 전락될까 우려스럽다.

<김완병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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