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현장시선] 돌봄, 인식의 전환과 참여적 공동체를 꿈꾸며

[이은희의 현장시선] 돌봄, 인식의 전환과 참여적 공동체를 꿈꾸며
  • 입력 : 2018. 01.05(금)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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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 줬나요?'라는 튀는 제목의 책이 있다. 고전경제학의 시초가 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흥미롭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라면서 개인들이 비록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 행동일지라도 그 행동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촉진한다고 역설했다.

위의 책의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막강한 이론적 위력을 행사한 반면, 정작 그가 매일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야채를 다듬고, 빵을 구웠던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돌봄'은 그의 이론에서 망각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사회유지의 기초적 동력인 '돌봄'은 애덤 스미스의 국내생산성(GDP) 개념에서 배제되었다. 가사나 돌봄 서비스의 구매(예: 가사도우미 고용)는 GDP에 포함되지만 가구 내 가사와 돌봄은 국가경제에서 배제된 아이러니가 '국부론'의 출간(1776년) 이후 2세기 이상 이어지고 있다. 성별로 불평등하게 지워진 돌봄의 책임은 여성에게 위험을 넘어 사회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정책들이 나오지만 저출산 기류가 반등되지 않는 것이 극명한 예일 것이다.

'돌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만 한다. 돌봄을 생산적 노동으로 인정하고 이를 생산성의 개념으로 측정하는 방안들을 연구해야 한다. 또한 돌봄의 책임을 다양한 주체가 함께 나누고, 그 결실이 공공의 이익으로 가시화되는 다양한 '보이는 돌봄' 공동체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

선진 복지국가의 흐름에서 흥미로운 점은 돌봄 서비스 영역이 개인과 커뮤니티의 주도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국가와 시장, 가족, 시민사회가 연결된 다양한 돌봄 형태의 실험이 장려되는 것이다.

제주에서도 아동 돌봄을 위한 의미 있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웃과 마을을 중심으로 힘든 일을 나누는 수눌음 정신을 돌봄 공동체 사업으로 이어가는 것인데 바로 '수눌음 육아나눔터' 공간조성 사업과 돌봄공동체를 지원하는 '모다들엉' 사업이다. 작년말까지 수눌음 육아나눔터는 20개소, 모다들엉 돌봄공동체는 37개 팀이 조성되었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연결망을 마련하고 자원과 기회를 이용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분배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철학과 인간관을 바탕으로 새 인프라를 만드는 작업이며, 돌봄 주체자요 수혜자인 이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의 가족친화지원센터는 이러한 사업을 지원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데, 사업의 주요 주체인 엄마들의 난관은 공간 마련이라고 한다. 지역마다 마을회관, 경로당, 도서관, 마을문고 같은 공공건물은 많은데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아동돌봄,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등이 지역사회 내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기획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바꾸는 데 돌봄 공동체가 기여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공재에 의한 공간만큼은 '소유에서 공유'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공의 이익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촉진되기보다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자원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민적 참여와 유대에 의해 확산된다.

새해에는 우리 제주가 돌봄의 공공적 가치를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과 다양한 사회적 돌봄 공동체를 확산하는 데 앞서가는 지역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은희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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