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 입력 : 2017. 12.13(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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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해가 지나고 지난해를 마감할 시간이 되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우리들에게서 사라진 것들은 너무나 많다. 사라져 간 시간, 사라져 간 생명, 사라져 간 물건들이 가뭇없이 자꾸 우리들 곁에서 없어져 갔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였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젊음의 시간도 흘러가고, 영원을 다짐하던 사람들도 우리 곁을 떠나고, 오랜 세월 동안 손때가 묻은 애지중지하던 물건들도 그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 소멸하는 것, 사라지는 것, 그 모든 것들과 헤어지면서 우리는 죽어서도 그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만남의 시간을 다하고 사라져 가는 생명과 존재, 한 시절을 다 하고 시들어가는 꽃과 나무, 모든 소멸하는 생명과 사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사라지는 것이 단순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고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사라지는 것들, 흘러가는 시간, 이별하는 사람, 버려지는 물건들은 모두 한때나마 찬란하게 이 지상에서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렇지만, 새해를 맞아 희망과 함께 새롭게 걸어놓은 달력은 이제 달랑 마지막 한 장이 남아있고, 한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소중하던 생명도 지금 어느 병상에서 숨을 거두어가고, 배달된 조간신문에 실린 숱한 이야기들은 밤이 되기도 전에 다 사라진다. 모든 존재와 사물은 저마다 소중한 것이지만 결국 그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고 만다. 사라져 가는 생명과 사물은 순식간에 존재에서 부재가 되어버린다.

실로 우리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기술과 자본의 홍수 속에서 존재의 삶만 확인하면서 살아간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발전하고 SNS 열풍이 불면서 현상적 삶이 전부인 듯 생각한다. 삶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나 인간다운 정신은 사라져 가고 있다.

존재와 현상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상 뒤에 감추어진 본질과 진실에 대한 인식이다.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은 현상에 대한 관심과 짝을 이루고 있다. 현상의 나타남과 사라짐은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루어질 때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진정한 삶의 인식은 현상과 본질,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를 올바르게 시작하는 단계에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 시대의 많은 고통은 인간다움의 상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인간다움의 상실이란 존재와 현상만 생각하고 사라지거나 부재하는 것에 대하여 인식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눈앞의 현실과 물질만을 생각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정신은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과 인간과 사물의 관계는 고통스럽다. 우리는 현상 뒤에 숨어있는 진실을, 사라지고 소멸하여가는 것들에 대한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의 모든 타인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이루고자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의 감정이라 할 것이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그리움을 남긴다. 우리들에게서 이미 사라졌거나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시간과 소중한 사람과 사물이 떠나가고 사라진다는 것이 한없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들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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