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장실습 이름으로 고교생 죽음 부른 현실

[사설]현장실습 이름으로 고교생 죽음 부른 현실
  • 입력 : 2017. 11.24(금)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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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현장실습에 나선 특성화고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은 잇단 사고에도 제도개선에 손놓은 정부와 정치권, 교육당국은 물론 열악한 노동 환경속으로 내몬 기업에 책임이 있다. 지난 9일 도내 한 음료제조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사고를 당한 뒤 열흘만인 19일 새벽 숨진 이모군은 사고 직후에도 혼자 방치됐다. 제때 손을 썼더라면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군은 숨지기 전 "아직 밥도 못먹었다"며 엄마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고 한다. 가족들로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일해야 할 정도로 고달픈 청춘들의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 전북에선 고객센터 현장실습생이 콜 수를 다 못채웠다는 문자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엔 서울 구의역서 현장실습생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때마다 제도개선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은 들끓었지만 지나고 나면 그뿐이었다.

현장실습 환경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업체들은 실습생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저임금의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구쯤으로 여기는 반인권적, 반노동적 행태와 사고는 여전하다. 그만큼 장시간에 걸쳐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이번 사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고 당시에 이군 혼자서 작업 중이었다. 현장실습생에게 원칙적으로 지도 능력을 갖춘 담당자를 배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가 나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었다.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육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취업률 향상에만 급급한 나머지 관리감독 등을 소홀히 한 책임이 크다. 현장실습생이 위험한 노동환경에 처한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철저한 점검과 반성이 필요하다.

추모집회에서 청소년들이 말한 것처럼 "이군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부당한 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을 부담시키는 현장실습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기성세대와 정치권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철저한 진상조사는 물론 제도 개선을 포함한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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