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가 이슈&현장]제주섬 무형문화유산 정책

[제주문화가 이슈&현장]제주섬 무형문화유산 정책
기능 종목 찬밥 속 구덕짜는 사람 가고 없다
  • 입력 : 2017. 11.20(월)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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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무형문화재 21개 종목 중 예능 분야 다수 차지
구덕 등 죽공예 지정 시기 놓치며 장인 거의 없어

시급히 보존해야 할 무형유산 목록화 등 서둘러야

1930년대 제주섬을 찾았던 일본인 이즈미 세이치. 그는 당시의 여정을 기록한 '제주도'에서 '구덕'에 주목했다. 이즈미 세이치는 "제주도에는 다른 곳보다 대가 풍부해 많은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구니류다"라고 했다. 제주 여인들이 가느다란 대오리로 엮어 만든 가는 대구덕을 외출할 때 반드시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다며 이를 진기한 풍속으로 소개했다.

구덕은 제주섬에서 전해오는 공예품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제주 사람들과 가까이해왔지만 구덕 겯는 기술을 가진 장인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20개가 넘는 제주도무형문화재 종목 중에서 구덕, 차롱 같은 죽공예는 없다.

▶기능 장인들의 오랜 경험 고령화로 위기=국가 지정과 제주도 지정을 합쳐 제주 지역 무형문화재는 26개 종목에 이른다. 이중에서 제주도무형문화재는 1971년 '해녀노래'를 시작으로 지난 8월 '제주도 영장소리'까지 총 21개 종목이 지정되어 있다. 38%가 보유자 없이 운영되는 등 전승 기반이 취약한 실정이지만 지정문화재는 그나마 형편이 낫다.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에서 빠진 전통 유산들은 시대의 세찬 변화와 고령화로 흔적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맨촌'으로 불리던 제주시 도련2동은 구덕 짜는 솜씨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맨촌 구덕은 눈감앙 사도 곱다(맨촌에서 만든 구덕은 보지 않고 사도 곱더라)"는 말이 있을 만큼 도련2동은 구덕 마을로 이름났다. 구덕 겯던 장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지금은 옛 말이 되었다. 도련2동엔 60년대 중반 죽세공단지회가 꾸려졌다고 전해진다. 집집마다 대나무를 심어 구덕을 엮었다는 서귀포시 토평동에도 1960년대 죽세공부업단지가 있었다.

무형문화재 정책에서 소외된 유산들은 버텨낼 힘이 부족하다. 구덕처럼 제주사람들의 생활 문화와 연관지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유산들도 기술을 가진 이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돌문화 석공 등 개별 보유자 지정 필요=201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제주 밭담 농업시스템'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시켰다. 제주 돌문화를 상징하는 밭담이 제주 밖에서 주목을 끌었지만 돌담 쌓는 기술을 전승할 기반은 허약하다.

제주도무형문화재 종목 중에 석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성읍리 초가장' 분야에 목공, 토공, 석공, 초가지붕 잇기를 뒀다. 하지만 성읍민속마을보존회로 보유단체가 지정되면서 석공 분야만 별도의 전승 체계를 갖추는 일이 쉽지 않다. 4개 분야별 보유자를 따로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해당 기술의 장인이 유고시 공석으로 남을 우려도 크다.

이 때문에 개별 보유자 지정을 통해 석공 등 고유의 전승 기반을 가꿔야 한다는 주문이 있다. '제주도 허벅장'은 2011년 '제주도 옹기장'으로 문화재 명칭을 바꾸고 전승 체계 개선을 위해 전승 분야를 굴대장, 질대장, 도공장, 불대장 등 4개로 확대했다.

제주도무형문화재가 예능 종목에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제주도가 시급히 보존해야 할 유산을 목록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를 놓쳐 오랜 경험을 가진 장인이 유명을 달리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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