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풀무치의 죽음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풀무치의 죽음
  • 입력 : 2017. 10.18(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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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오후에 아파트 근처를 산책한다. 아파트 화단에는 군데군데 초록빛 풀들이 살아남아 있었다. 고층 건물이 가득한 도시에는 잿빛 먼지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남아있는 화단의 녹색 초목들이 도시의 삭막함을 가려 주고 있다.

화단 한 쪽에서 풀무치의 시신이 보였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뒤로 하며 풀무치는 죽어서 버려져 있었다. 처음에 빈터 어딘가에서 날아온 가로수의 마른 잎인 줄 알았다. 서걱대는 것을 처음 만졌을 때 마른 나뭇잎인줄 알았지만, 그것은 죽은 풀무치의 속 날개였다.

풀숲 속을 헤쳐 보니 여치와 잠자리의 주검도 보였다. 풀무치와 여치와 잠자리들은 그들의 초록 날개로 찬란한 지난여름을 분주히 날아다니다 이곳까지 와서 죽게 된 것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사람들은 풀무치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 풀벌레의 죽음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삶은 무겁고 진지하지만 죽음은 너무 경박하고 허무하다. 죽음은 아주 가까운 데서 보여지고 모든 주검들 앞에 서면 까닭모를 슬픔에 잠긴다. 누군가의 공격에 의해서 아니면 제 생명을 다한 채 죽어서 무참하게 땅에 떨어져 있는 풀무치와 잠자리의 주검을 바라보며, 따뜻한 집과 살아 있는 날들의 이 시간을 고마워한다. 죽어있는 나무, 죽어있는 새, 죽어있는 생선, 죽어 있는 사람과 같이 모든 죽은 것은 존재가 정지되고 소멸되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죽음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깨달을 수 없다. 삶과 죽음 사이의 차이는 지상이냐 지하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들을 눈물의 길로 이끌며 장의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서 지하에 묻힌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그동안의 살아온 과정이 원통해서 허무를 느끼게 되고 후생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묘비명을 만들고 그를 기억한다.

그렇지만 풀무치는 죽음으로 그만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풀무치가 죽지만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서러운 풀벌레 울음을 들으면서 그렇게 고적한 밤을 보냈으면서 사람들은 풀벌레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발견한 풀벌레의 주검도 언젠가 내 영혼을 흔들던 그 울음소리의 주인공이었으리라. 모든 풀벌레들의 죽음과 함께 그들의 울음도 함께 죽었다.

새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듯이, 풀벌레들은 울고 노래함으로써 외로운 영혼을 달랜다. 그렇지만 만물의 영장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도시는 갈수록 어둡고 삭막해져 간다.

풀무치는 산이나 들과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초록의 길을 떠나서 이 삭막한 도시의 깊은 곳으로 날아 왔다. 그 옛날에는 초록으로만 이루어졌던 길이 이제는 잿빛 도시로 바뀌었다. 풀무치는 온통 초록으로 이어진 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회색 콘크리트의 세계로 나오게 되었다. 도시는 괴물같이 커지기만 하고 사람의 무리는 넘쳐 홍수를 이루고, 나무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숲과 산은 무너지고 풀벌레들은 길을 잃은 채 죽어가고 있다.

초록으로 돌아가는 길을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내 풀무치는 죽었다. 그의 주검을 풀숲 깊숙한 곳에 묻어주었다. 풀무치가 사라진 도시는 적막하고 어두웠다.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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