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지리산과 한라산 그리고 지역주의

[문화광장]지리산과 한라산 그리고 지역주의
  • 입력 : 2017. 10.17(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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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다녀왔다. 남원 실상사 도법스님을 찾아뵈었다. 한림 명월초등학교에서 열릴 사회예술프로젝트를 말씀드렸더니, 그곳이 자신의 모교라 하셨다. 4·3 유복자인 그는 유년의 기억을 잊었지만, 명월대의 울창한 숲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리산 인연으로 만난 스님을 제주도 인연으로 새로 만났다. 인연이란 그렇게 잇고 잇는 것. 스님의 말씀은 연기론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뱃속의 태아는 인격적 존재이므로 엄마와 태아는 두 개의 개별 존재다. 하지만 엄마 탯줄로 연결된 두 존재는 하나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등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연계를 통해 우리는 인드라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스님의 말씀은 늘 먼지 한 톨과 거대한 우주의 간극을 좁혀준다.

볕 좋은 가을날, 지리산둘레길의 운봉-인월 코스를 걸었다. 지리산 바래봉 자락 운봉 평지의 넉넉함과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좋았다. 숲길에서의 느린 걸음과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예술가의 카페와 벽화들도 신선했다. 14개월차 입도민의 눈에 들어온 지리산과 그 언저리의 풍광은 이내 한라산과 제주도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리산에는 주름진 골짜기가 있고 그 골짜기마다 마을이 있다. 한라산에는 계곡이 만들어낸 깊은 주름은 없고, 다만 거대한 오름 한라산과 그 자락에 수백개의 작은 오름들이 있을 뿐이다. 지리산에는 숨을 곳이 많고, 한라산에는 숨을 곳이 적다. 지리산에는 깊은 주름마다 각각 다른 문화와 공동체가 존재한다. 한라산에는 해변을 중심으로 마을이 흩어져있다.

지리산과 한라산 자락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도 사뭇 다르다. 지리산에는 경남, 전북, 전남에 걸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남원 등 5개 시군이 있지만, 한라산 주변에는 제주도라는 단일한 광역행정단위가 존재한다. 물론 제주도에는 산남과 산북, 동쪽과 서쪽의 차이가 엄연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지리산의 다원성과 한라성의 단일성은 큰 차이를 보인다. 양자 사이 지역성도 완연히 다르다. 지리산 자락 사람들은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각자 살아가지만, 한라산 자락 사람들은 자타공인 제주도민이다. 자연의 거대한 힘은 이렇게 그곳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삶을 다르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지역과 지역은 서로 다른 지역적 이해와 가치에 기반해 각자의 지역성을 추구하는 지역주의를 낳는다. 이것은 자연의 품에 안겨 사는 인간사회의 숙명이다.

물론 지역주의는 극복대상이다. 특히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는 한국사회의 진화를 가로막는 적폐다. 그것은 영남의 패권주의와 호남의 피해의식이 결합한 결과다. 하지만 지역주의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지역성이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의 문제다. 영남이 없으면 호남도 없다. 모든 것은 상호성에 근거한다. 따라서 폐쇄적 지역주의를 지양하고 건강한 지역주의를 세우는 일은 인류의 공통과제다. 제주도 지역주의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는 이웃한 다른 지역과 관계 맺는 데 있어 다소간 이질적이었다. 그 이웃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지역성과 지역주의를 다시 사유하고 건강하게 품어내는 길은 (비록 물 건너 일지라도) 이웃한 지역들과 좀 더 뜨겁게 껴안아 보는 데서 열린다. 무릇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너나없이 하나로 이어져 있으므로.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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