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믿는 도끼
  • 입력 : 2017. 09.19(화) 00:00
  • 허수경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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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 별이가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친구들 이야기를 하느라 입이 쉴 틈이 없다. 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은 공부는 둘째이고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다. 내 생각에도 아이들은 교과서보다 친구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요즘은 넷으로 이루어진 친구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 서로 양보하도록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데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참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돌이켜보니 별이가 4살적에 희한한 병을 앓았다. 일명 '내 거야' 병이다. 자신의 장난감은 당연하고 친구들, 심지어 전혀 낯선 곳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도 자신의 마음에 들면 다가가서 '내 거야'하고 외쳤다. 당연히 상대 아이는 울었다. 처음에는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 부모에게 사과하고 별이를 혼내기를 여러 번, 어느 순간부터는 미리 별이를 주시하고 있다가 "저 건 네 것이 아니야, 가지고 놀고 싶으면 잠시 빌려달라고 하자. 네 것도 빌려줄 수 있지?"라고 선수를 치며 불타는 별이의 눈빛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별이가 울었다. 나는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는 건 아닌가, 별이가 이기적이고 막무가내의 성향을 지니게 되는 건 아닐까 매우 걱정스러웠다. 맞고 다닐까 봐 걱정이 아니라 다른 아이를 때리고 꼬집는 아이가 내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다 번쩍 났다. 나는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게 아이를 훈육했다.

다행히 다섯 살이 되고부터는 더 이상 '내 거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 주고 싶어 했다. 너무 많이 주고 와서 속이 탈 지경이었다. 그때서야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담담히 지켜보는 요령이 생겼다. 이제 별이는 "엄마, 내가 인생 10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어린애 같아?"라는 말로 나를 어처구니없게 할 만큼 컸다. 별이가 중학생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기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두렵다.

얼마 전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여중생들의 '폭력 인증 샷'이 도무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괴로운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친구들로부터 그런 끔찍한 폭력을 당한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가해자는 그토록 잔인한 폭행을 저지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어 온 것인지, 부모들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 건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모두 건강해질 수 있는 묘책은 정말 없는 것일까?

난폭해진 학교에 무방비상태로 내 아이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안하고 공포심마저 느끼게 한다. 많은 이들은 '나쁜 아이들'에 대하여 나이제한 없이 바로 격리시켜주기를 원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보호될 수 있고 나쁜 아이들이 겁을 먹고 덜 나쁘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와 공분의 바탕에 '내 아이는 착하다', 혹은 '내 아이는 그럴 리 없다'는 안일한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믿음, 나는 결코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지 않다는 근거 없는 자만은 아이가 가해자가 되었을 때, 사과는커녕 '그럴 수도 있다'고 적반하장의 큰소리를 치거나 내 자식의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죄를 저지르게 한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만큼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살피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 막연한 믿음과는 달리 자식과 합작하여 누군가의 인생을 산산 조각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수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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