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어쩌자고

[하루를 시작하며]어쩌자고
  • 입력 : 2017. 08.23(수) 00:00
  • 강문신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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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우면 떠는 게 제일"이라던 군 생활, 그것도 그 모진 하사관학교 훈련을 마치고, 의정부 모 사단 모 대대 보급하사로 배치됐을 때의 일이다.

1종(쌀) 창고로 가는데 갑자기 들리는 고함소리 "고냉이 시무라! 저 고냉이 시무라! 축바름더레 닥라남쩌!" 달아나는 고양이 보다, 혈혈단신 이곳에서 제주말을 들은 것이 더 없이 반가웠다. "김 일병, 제주 어디야?" "예, 제주시 동문통입니다."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취사병이었던 그는 기름을 만지기 때문에 지급받은 군복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웠다. 하루는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을 할듯할듯 한다. "왜 그래, 김 일병" 휴가를 가는데 입고 갈 군복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군 식사는 대개 도루묵이었지만, 모처럼 닭이 나오는 날은, 그는 한 마리를 싸두었다가 밤에 내무반장실로 가져오곤 했다. 만류했지만 줄곧 그리 하였던 것이다.

무시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그 군 생활, 당시 본부중대 중대장은 파월 태권도 교관출신으로, 재 파월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상시간 전, 컴컴한 연병장에 나와 혼자 몸을 풀면서 "강 하사! 나와라!"고 소리치곤 했다. 연병장 한 가운데서 대련이 시작된다. "식사시간이 지납니다." 전갈이 올 때까지 땀범벅 그 대련은 계속됐다. 복싱챔피언을 꿈꾸었던 나는 마음만 먹으면 그를 압도할 수 있었다. "강 하사, 나의 스피드를 잡다니, 대단해" 그는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곤했었다. 어느 날 수송부 정 상사는, 저녁점호시간에 관물정돈이 잘 안 됐다고 김 병장을 질책하던 중, 태도가 불량하다며 호통을 치다가, 제 성질을 못 이겨 철모를 벗어던지고 헤딩박치기를 하였다. 이빨에 받쳐, 흐르는 피를 흠치며 "이건 명백한 하극상이야! 군법회의에 넘기겠어!"

또 인사계 황 상사는 새벽점호 때, 얼굴이 벌건 채로 연병장에 나서서 "앞으로 근무시간에 술 마시는 놈들은, 모조리 다 직이겠어! 나, 이거, 어젯밤 마신 술이야"

이 부대에서 강 하사는 인기(?)가 높았다. 내무반장에게는 밥을 타오고 하는 일등병 당번이 있었다. 당시 화랑담배는 이틀에 한 번씩 식기에 넣어서 배급되었는데, 담배를 안 피우는 나는 밥 타오는 당번에게 그 담배를 가지라고 하였다. 이 말이 퍼지면서, 어느 날은 상병이 밥을 타오더니 다음은 병장, 그 다음은 제대말년 병장까지 타오는 것이었다. 일등병 상등병 계급으로는 감히 나의 식사당번에의 꿈을 접어야했던 것이다.

이제 그 육군하사는 속절없이 늙어 가는데, 며칠 전 만난 사람 이름도 가물할 때가 있는데, 어쩐 일인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그 군 생활은 어제인 듯 생생하기만 하다. 특히 군번, 사병군번 12016416, 하사군번 80120485는 주민등록번호보다 더 또렷이 기억된다. 군 생활이나, 부대낀 세상살이나, 가슴 아픈 사연들,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야 하는데, 등짐 부리듯 홀가분히 잊혀져야 하는데, 아픔마저 선연한 그리움으로 남아… 어쩌자고 이러는가. 하루 이틀이 지루해도 일이십년은 잠깐이라 했듯이, 정말 잠깐인 그 반백년에, 그때 그 분들은 군에서처럼 모두 잘 지내고 계실까? 여전히 술도 마시면서, 억지도 좀 부리시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시면서, 다들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실까? 0형, 정은이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며 핵으로 눈깔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우리 집구석 반대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 이르러서도 "사드 배치는 절대 안 된다"며 막무가내 막아서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대체 어쩌자고! 정은이가 좋아할 일만 골라 하시는지요?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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