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눈의 미학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눈의 미학
  • 입력 : 2017. 07.05(수)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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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체에서 어느 부분도 중요치 않은 곳은 없지만, 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눈이 없으면 사물도 사람도 세상도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을 통해 세상의 만물을 보게 되고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에 도달한다. 영어에서 "내가 본다(I see)."는 말은, 눈으로 본다는 뜻 이외에도 "인식하며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눈울 통하여 사람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보고 인식한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태초에 인간은 착한 눈을 지니고 선한 것만 보면서 살았다. 태양은 '신의 눈'이었다. 태양은 생명 창조의 원천이며 우주의 지배원리이고 궁극적 질서로 표상되었다. 그러나 태양과 신이 창조적이면서도 파괴적이듯, 그 속성을 이어받은 인간의 눈도 양면성을 띠기 시작했다.

서구사회가 근대로 발전하게 된 것은 개인이 '보는 주체'에서 '생각하는 주체'로 성장하면서부터였다. 인간이 무언가를 보고자 하는 욕망은 새로운 것과 진실한 것을 향한 마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좋아하는 것을 본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은 인간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저마다 목적은 달랐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창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원시적이고 순수했던 눈은 과학과 자본의 수단을 위한 눈으로 변해가게 되었다. 더 나아가 현대에 이르러 눈은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여 외형적 의미 찾기에만 여념이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통하여 새로운 관념이나 정신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를 육안으로 응시하는 것은 물론 '내면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물리적 두 눈이 바라보는 감각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을 통하여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지혜와 진리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새로운 눈으로 진리를 찾고자 한 석가의 깨달음과 예수의 사랑과 헬렌 켈러의 소망은 귀중한 것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마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갈수록 기술화되고 상업화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세속적인 외형의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현대인간들은 줄기차게 '보는 것'에만 집착한다. 사람들은 외형에만 사로잡혀 진정한 눈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컴퓨터와 TV는 가짜 현실을 모방하며 진실한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 세상과 존재의 본질이나 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가상적 허위의 현실을 보여 줄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올바르게 감지할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인간의 본성은 본다는 것 그 자체이었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곧 본다는 것이었고,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눈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걸 잃는다는 의미였다. 그리스인들은 누군가 죽었을 때 "마지막 눈길을 거두었다."고 표현한다.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슬퍼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눈을 뜨고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온 천지를 물들이고 있는 초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보고 싶은 얼굴, 필자가 지금 헤매고 다니며 바라보고 있는 저 낯선 세상과 풍경들, 그들을 기록한 책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고 가야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보고 느끼시라. 이제 곧 우리의 눈이 닫히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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