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문화·예술의 잣대

[하루를 시작하며] 문화·예술의 잣대
  • 입력 : 2017. 07.05(수)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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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에 한 발이라도 걸쳐 둔 사람이라면 누구일지라도 문화와 예술에 가해지는 잣대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시대 상황에 따라 문화·예술인들의 자유 의지는 사회나 정부와의 갈등으로 늘 대립했지만, 어떤 시대나 어떤 나라일지라도 문화와 예술은 자유로운 창작 의지에 의해 표현돼 왔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교묘한 통제도 늘 있어왔지만 문화·예술인들의 의지에 의해 언제나 그것은 파기되고 말았다. 문화와 예술의 잣대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와 예술에 가해지는 구속과 억압이 문화와 예술을 왕성하게 했던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사는 우리의 역사만을 보더라도 비극이었다. 세계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연암 박지원의 글과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당시 거의 소멸될 위기에서 겨우 오늘까지 남겨진 것들이 빛을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창작의 주체와 감상의 주체 간 소통은 그 당시로서는 몹시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문화와 예술이 70년대처럼 억압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절차에 의해 소외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문화·예술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된다. 문화·예술의 고저나 경향을 어떤 누구도 재단할 수는 없다. 연초가 되면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제주문화예술재단을 통해 국고보조금을 신청하고 그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신청한 모든 문화예술인들에게 그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단체로부터 불만의 목소리를 듣게 됐는데,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해명은 단체보다 개인 중심으로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독단적 결정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단체에 대한 지원 비율이 지난해와 비교해서 설득력이 있는 해명인지 궁금하다.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은 심사 과정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 엄격한 감사 요구, 신뢰성이 담보된 심사 청원 등을 말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흐름을 개인이나 단체, 특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어·재단해서는 안된다.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의 성격과 위배되고, 지난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초토화시킨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닿아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 등은 제주의 문화·예술인들과 충분한 공청회의 과정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그런데 보조금의 분배 과정에서 그 기준이 문화·예술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에 의해 결정돼버렸다면 이는 관치 관행으로 심각한 문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는, 문화·예술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제주도의 자랑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문화·예술인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특정 단체들에 지원금이 과다하게 혜택이 주어졌다면 문화·예술의 다양성이란 토양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뿐만 아니라, 제주의 자랑을 웃음거리로 내몰아버린 꼴이다. 문화·예술의 실현은 보조금을 받기 위한 그럴싸한 기획제안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 등이 특정 분야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온 자취의 모음이다.

올해는 녹음이 짙은 숲에서 들려올 작은 음악회 공연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문예회관 한 전시실에 소박한 표구들이 걸려있을 젊은 서예가들의 서예전이 사라지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제주의 들꽃이며 풍경 그리고 유물, 유적 등을 부지런히 담아내던 사진첩을 받아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어느 문학회에서는 이십여년 이어온 행사와 동인지 발간 규모를 축소한다고 한다. 우리 제주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문화·예술의 잣대는 소통일지도 모르겠다.

<좌지수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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