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라일보 DB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닭 700여마리가 식용 닭고기로 도축돼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제주도 방역당국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도민들에게 공개하지도, 상급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취재가 시작되자 농림부는 보고 누락 경위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기로 했다.
29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시 등에 따르면 지난 5월30일 제주시 애월읍 A농장은 제주시 한림읍의 한 닭 사육농장에서 늙은 닭(폐계) 921마리를 사왔다. A농장주는 매입한 폐계를 차량에 실은 채로 자신의 농장에서 잠시 보관하다가 이튿날 도계장으로 옮겨 모두 도축했다.
폐계를 운반한 차량은 A농장이 닷새 전 전북 종계장에서 산 오골계를 이틀 뒤 오일시장에 유통할 때도 쓰였다. AI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전북 종계장에서 이날 사들인 오골계 500마리는 나흘 뒤부터 집단 폐사하기 시작했다. 정밀검사결과 폐사한 오골계는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것으로 최종 판정됐다.
전문가들은 A농장의 사례처럼 AI에 감염된 가금류를 실은 차량이 나중에 다른 가금류를 운반할 때 쓰였다면 '교차 오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교차 오염은 전염병에 걸린 가축을 도축한 칼이나 운반한 차량과 같은 '2차 매개체'에 의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형태를 말한다.
제주도는 고병원성 AI 감염 오골계를 실은 차량이 폐계 운반과정에서 쓰인 사실을 지난 22일 오후 누군가로부터 제보를 받고 처음 인지했다. 앞서 제주도는 지난 3일 A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진행하면서도 이런 사실은 전혀 몰랐다.
고병원성 AI 확산을 막기 위해 진행되는 살처분. 한라일보DB
제주도는 제보를 받은 직후 조사에 나서 A농장주가 도축한 닭들을 애월읍 구엄리의 임대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주도는 이날 저녁 제주시 축산과에 냉장고에 있는 닭을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했지만, 축산과는 냉장고가 자물쇠로 잠겨있다는 이유로 지난 24일에야 문을 개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을 연 냉장고에는 도축된 닭 210마리 밖에 없었다. 시는 A농장주를 추궁해 '나머지 711마리를 이미 지난 2일 오일시장에서 유통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시는 냉장공에 있는 210마리를 폐기했다.
도내 모 수의사는 "AI에 교차 오염된 닭은 도축됐다하더라도 75℃이상 온도로 가열하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몸 안에 남게된다"면서 "또 이 도축된 닭을 만진 사람을 통해서도 AI가 전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AI 오염 가능성이 있는 닭 700마리가 유통된 것도, 200마리를 폐기한 것도 농림축산식품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에게 AI방역 추진 상황을 직접 보고하는 영상회의가 지난 26일과 27일 연이어 열렸지만 이 때도 제주도는 보고를 안했다. 또 언론사에 수시로 공개하는 'AI 방역 추진상황' 문서에도 이런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
도 관계자는 보고 누락 이유 등을 묻는 질문에 "나중에 보고할 계획이었다"면서 "또 폐계가 차량에 실려있던 시간도 짧아 AI에 오염될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는 AI 감염 우려 닭 700여마리의 정확한 유통경로를 찾기 위한 시도도 하지않았다. 제주도는 유통경로를 파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이미 소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명했지만, 누군가의 냉동고에 아직까지 보관되고 있을 가능성은 배제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선 당연히 제주도가 보고를 했어야했다. 왜 보고를 누락했는 지 진상을 파악하겠다"면서 "유통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