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제주시의 주거환경관리사업 시급히 재고해야

[특별기고]제주시의 주거환경관리사업 시급히 재고해야
  • 입력 : 2017. 06.29(목) 00:00
  • 한승훈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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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의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상황에 맞추지 못한 무기력하고 관행적인 정책으로 갈등과 몸살을 앓는 한 마을이 있다. 화북1동 4086-1번지 일원의 약 2만8504㎡의 규모의 주거지역에서 시행되는 '제주 뉴(NEW) 삼무형 주거환경관리사업(화북금산지구) 정비계획(안) 수립 및 정비구역(안)'이란 사업 때문이다.

사업내용을 보면 환경개선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도시기능을 회복하는 기반시설 정비, 지역특성을 살린 주거환경관리사업 정비계획 및 단계적 실행방안 수립으로 되어 있다. 사업설명은 환경 정비, 개선 위주로 장황하게 설명하나 실제 내용은 주거 상황과 지형의 고려 없이 그냥 획일적인 십자형 바둑판과 같은 도로를 개설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주시가 제시한 항공사진의 위치도를 보면 그 내용이 명확히 드러난다.

화북포구는 주위가 기존 부락으로 빙 둘러 싸여져 있고 옛 길과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포구진입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해당 마을은 화북포구에 접해 있으며 올레길 18코스와 만난다. 이 마을은 옛 길, 올레 등으로 이뤄진 정겹고 아름다운 골목, 전통 가옥과 우영팟 등 옛 정취가 남은 제주시의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이다. 해당 지역의 길이 직선화되고 대형화된다면 포구를 둘러싼 옛 길과 골목의 정취가 깨져 버린다.

이 사업의 근거가 되는 바둑판 모양의 예정도로는 1976년 지정된 것이다. 그 시대의 개발 논리로는 타당한 사업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40년 세월이 흘렀다. 당연히 도시 정책도 변해야 한다. 요즘은 도심 재생도 개발의 한 축이 돼서 다시 옛 모습으로 살려내고 있는 곳이 많다. 화북동의 도로가 40년 전의 도로 상황도 아니고 이미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해당 지역의 북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의 일부는 이미 도로가 직선화, 대형화가 되어 있는데 굳이 포구 앞 지역까지 바둑판 모양의 도로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주변엔 옛날 길, 신설된 도로, 골목 그리고 올레 등 참 길이 많다. 여기에 40년 계획된 것이라고 또 길을 낸다면, 정말 정신 사나울 정도로 길만 많아진다. 손대지 말아야 할 부분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계획된 것이니 그냥 가자는 것은 안일한 정책이다.

제주의 집들은 올레로 연결되어 있고 집안은 안거리, 밖거리, 우영팟 등 작은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작고 조밀하지만 기능적이다. 이것이 제주 스타일이고 지금 말하는 휴먼 스케일이다. 제주시는 40년 전의 도로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것이 아니라 그래도 이 정도 나마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옛 모습과 현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화북 포구를 둘러싼 기존 옛길, 골목길 중에서 서북 방면의 포구 진입이 직선화 대형화되어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역사마을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워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 땐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다.

길은 통행의 기능도 있지만 만남과 소통의 기능도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부디 이 동네를 한번 걸어보시라. 아침에 걷고 저녁에도 걸어보시라. 그리고 주민들과 이야기해 보시라. 그래서 40년 전에 그려진 계획서의 남은 공간을 숙고 없이 허물지 않고 그 공간을 소중히 여겨 지켰다는 평가를 받도록 제대로 결정하시길 부탁드린다. <한승훈 (사)제주문화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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