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문화광장]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 입력 : 2017. 06.27(화) 00:00
  • 이나연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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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대학원 학장과 전화면접을 본 장소는 프라하의 한 호텔이었다. 인터넷 기반 통화 서비스인 스카이프로 이뤄진 인터뷰였다. 뉴욕의 시간대를 확인하며, 호텔에서 예상 질문지를 프린트해 답변을 연습했다. 호텔에 예약을 할 때부터 인터넷 연결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체크했다. 작은 호텔방에서 노트북으로 전화가 걸려오길 기다렸다가 별 문제없이 전화면접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중에 학장과 프라하의 야경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대학원 합격통지를 들은 것은 파리의 숙소에서였다. 유학생이 빌려준 옥탑방의 작은 침대에서, 합격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 날 밤, 함께 여행중이던 이와 노천카페에서 가벼운 축배를 들었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뉴욕생활의 주된 일은 한국의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는 일이었다. 모두 이메일과 화상전화, 온라인 채팅으로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주의 미술관에 취직을 하기 위해 치른 면접도 스카이프를 통해서였다. 천안에 있는 인사팀장과 브루클린 집에 있던 입사지원자인 나는 다시 온라인 화상통화로 면접을 봤다. 역시 합격통지는 이메일로 받았다. 그렇게 제주로 들어온 게 2015년 이맘때의 일이다.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살지만, 한 번도 내가 요즘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델리에서 최근에 나온 신간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디지털 노마드'를 읽으면서 알게 된 바가 있었다. 내 관심사가 투영돼 고른 책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요즘 고민 중인 모든 논의가 압축적으로 조사, 정리된 책이었다. 뭣보다, 가장 최근에 머릿속에서 잦은 빈도로 떠돌던 문장 "제주에서 뭐하고 살지"에 대한 실마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져 있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대표 문장은 그렇다. "디지털 노마드는 단순히 여행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하고 살아갈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IT관련 일을 하는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해준다. 근 십여 년간 내 라이프스타일은 완전히 디지털 노마드였다. 노트북과 전기와 와이파이만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었다. 사는 곳, 잠시 머무는 곳, 혹은 여행하는 곳은 늘 달랐지만, 언제나 글이 실리는 지면이 있었다. 한글을 쓰는 지면이 한국에 있었고, 그 지면이 곧 직장이었다.

이상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트렌드를 빌어 제주에서 지면을 내어주는 문화예술잡지 '씨위드'를 만든 명분이다. IT관련 종사자가 아닌 문화예술종사자들이 자유롭게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매체가 '씨위드'였다. 같은 바다를 나누고(sea with) 살고 있는 전세계의 예술인들이 모여 서로의 시각을 공유하는(see with) 지면 놀이터. 그래서 씨위드는 대대적으로 전세계의 모든 글작가, 그림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디자이너, 번역가 등 프리랜서로 활동 가능한 모든 이들에게 함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세계를 무대로 일을 해보자고 권유하는 중이다. 이 글을 읽으며, 오호라 그런거였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씨위드'에 문을 두드리면 된다. 사실 손 아프게 두드릴 것도 없이 이미 열려있는 문에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이나연 씨위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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