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가보지 못한 길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가보지 못한 길
  • 입력 : 2017. 05.24(수) 00:00
  • 허상문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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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보지 못한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몸이 하나이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보았다."

인생과 세상의 모든 길은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가본 길과 가보지 못한 길,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길 있는 길과 길 없는 길. 그 길들 앞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어느 한 길을 반드시 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두 길을 다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조건이면서 공통의 운명이다. 어느 길에 한번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결코 다시 되돌아올 수가 없다.

노랗게 물든 길과 붉게 물든 두 갈래 길은 모두 유혹적이다. 어느 길이 더 아름답고 평안한 길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가보지 못한 길'이란 사람들이 쉽게 가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우리에게는 매일 매일 '가야 할 길'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어딘가를 가야만 한다. 인생에 충실한 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가 없다.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하고 힘들더라도 오직 그 길을 바라보며 열심히 걸어간다.

새로운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안주하는 가운데에는 진정한 개인적·사회적 발전은 없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길과 세상을 꿈꾼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길로 당당히 나아가지는 못한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주체로서의 인간과 사회를 이루기 위한 조건은 과거를 반성하고 왜곡된 삶의 구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데 있다. 한 사회의 발전은 그동안의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요소에 맞서 이를 극복해내는 동시에,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걸어온 길 보다 더 새롭고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 그곳은 미지의 길이지만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고치고 버려야 할 유산들은 너무나 많다. 그동안 이루어낸 외양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드리워진 전근대적인 인식, 천민자본주의의가 낳은 물질만능주의, 왜곡된 가치관이 만들어낸 부정과 부패의 고리, 우리사회에 켜켜이 쌓여 있는 이런 적폐들이 이제는 정리되고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태 가보지 못한 길에 들어 선 지금,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일들로 인해 사람들은 낯선 세상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선택하겠다고 해도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버리고 새로운 것만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 둘 바뀌기 시작하고 우리사회가 달라진다면 결국 새로운 삶이 열리게 마련이다. 지난겨울 오랜 추위에 떨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에 봄과 여름이 성큼 다가온 거와 마찬가지로.

<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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